지난 연말 넷플릭스에 공개된 [고요의 바다‘는 8부작 드라마이다. 이 작품은 최항용 감독이 2014년 발표한 37분짜리 단편이 원안이 되었다. 최항용 감독에게 직접 [고요의 바다]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인터뷰는 서면 질의에 서면 답변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Q. 2014년 만든 단편을 기반으로 8부작 미니시리즈가 완성되었다. 단편과의 연계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설정과 확장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최항용 감독: “SF장르는 설정이 심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토리를 확장하면서 설정이 복잡해질 수 있는데 설정이 복잡해지면 세계관을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설명이 많아지고 이야기 전개가 느려진다. 이 부분을 가장 염두에 뒀고, 또 그것이 해결하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했다.”
“단편에서 숨겨진 이야기들 혹은 비워져있던 공간들을 채우면서 스토리를 확장시켰다. 그 중에 물이 부족한 지구의 모습을 보여준 지점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단편에서 만족스럽게 구현하지 못했던 ‘월수’나 ‘루나’를 제대로 보여줌으로서 세계관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가장 크게 변화된 부분은 지구의 환경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등장인물들이 물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설정을 전달함으로써 기지 내에서 겪는 사건도 단순한 생존이 아닌 이면의 의미를 갖고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Q.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어떻게 성사되었는지. 원래 8부작 드라마를 구상했는지, 아니면 영화였는지.
▶최항용 감독: "장편제안을 받고 정우성 대표를 압구정에 있는 한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가 2014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고요의 바다’ 장편화에 대해선 이미 서로의 생각을 알고 만났기 때문에 작품 이야기를 길게 하진 않았다. 사소한 일상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고요의 바다]는 처음에는 영화로 만들 계획이었다. 장편화를 처음 계획했을 때는 한국에 넷플릭스가 있기 전이었다. 4년 동안 영화를 준비했지만 안타깝게도 제작이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전화위복으로 넷플릭스의 제안을 받아 더 좋은 작품으로 태어나게 된 것 같다.“
Q. (공개되기 전 기자들에 제공된) 스크리너로 봤을 때 [닥터후]의 ‘화성의 물’에 나오는 장면이 먼저 눈에 띄었다. 하나의 콘셉트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 장면 설명하자면.
▶최항용 감독: “‘고요의 바다’를 만들기 전에 [닥터 후]를 보진 못했다. 이번에 얘기를 듣고 찾아봤는데 왜 콘셉트를 가져왔다고 생각하는지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럴 의도는 없었다. 내가 2014년 만든 단편 ‘고요의 바다’는 ‘물이 없는 달에서 사람들이 익사한다.’는 아이디어로 출발했고 그 아이디어를 쭉 따라가며 발전시키다 보니 ‘월수’로 죽어가는 현재의 그림에 도달했다. 입에서 물을 쏟는 장면이 워낙 강한 컨셉(그림)이라 두 작품의 아이디어가 같다고 느끼실 수 있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접근 방향이 다른 아이디어이다. [닥터 후]의 화성의 물은 감염되어 좀비(?)가 된 사람들이 물을 뿜으며 ‘공격’하는 설정이라면 ‘고요의 바다’는 월수에 감염된 사람들이 폐에 물이 차면서 ‘사망’하는 설정이다. 또한 화성의 물은 인간을 공격하려는 ‘자아’가 있지만 월수는 ‘자아’가 없다. 물을 소재로 감염된다는 지점이 비슷하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점은 꼭 화성의 물을 봐야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Q. [에일리언]이나 많은 레퍼런스 작품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것을 뛰어넘는 [고요의 바다]의 독창성이나, 장점이 있다면.
▶최항용 감독: “‘고요의 바다’와 같이 고립된 환경에서 생존을 다루는 작품에서는 인간의 추악한 면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 반면 ‘고요의 바다’는 좀 더 이성적이고 선한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본다는 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 무대가 되는 발해기지만이 아닌 지구의 상황도 함께 보여주면서 큰 주제를 다룬다는 점이 ‘고요의 바다’를 더 의미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Q. 굳이 과학 다큐로 볼 필요는 없지만, SF물이라면 최소한의 과학적인 설정을 갖고 있었을 것 같다. 과학적 디테일과 현실적 구현에서 어떤 밸런스를 찾았는지. 물에 대한 설명, 복제인간이라는 설정, 중력문제 등등.
▶최항용 감독: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자문을 받으려고 노력을 했다. 고증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실제로 부족했던 지점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예산과 시간의 제약으로 구현이 힘들었던 지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저중력의 표현이 그렇다. 달 지면을 걷는 인물들이 11명이었는데 기술적으로 와이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인원은 1명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시간의 제약으로 와이어를 사용할 수 없는 장면들도 있었다. 그리고 자문을 받은 경우도 생각보다 해결점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연출은 미래의 기술을 상상하는 반면 전문가는 현재의 기술을 바탕으로 가능한지의 여부만 얘기해 줄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발해기지 내 인공중력에 대해 자문을 받게 되면 기술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답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있지 않은 기술을 갖고 어떻게 가능하게 적용할 수 있을 지는 창작자의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발해기지 내부를 모두 저중력으로 표현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인공중력은 꼭 필요한 설정이었고 기존의 다른 영화들에서 답습해 온 관성으로 시청자분들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Q.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마치 [디 워]가 우리나라 CG의 가능성에 큰 희망을 안겨주었듯이 [고요의 바다]도 우리나라 SF의 미래를 확장시킬 것으로 본다. 감독님은 [고요의 바다]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최항용 감독: “‘고요의 바다’를 통해 지금까지 주저해왔던 많은 제작자와 감독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SF를 시도하고 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에 SF작품을 하시는 분들이 ‘고요의 바다’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저 역시 다음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Q. 캐스팅 관련하여, 몇몇 스타 외에 비교적 덜 알려진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가 있는지. 제작비 때문인지.
▶최항용 감독: “‘고요의 바다’의 등장인물들을 꼭 스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배두나 배우님과 공유 배우님도 그분들의 연기력과 캐릭터에 잘 맞는다는 생각으로 캐스팅 제안을 드린 것이지 그분들이 스타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작품의 특성상 주인공을 해 본 경험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Q. 넷플릭스와의 작업에서 특별했던 점이 있었다면.
▶최항용 감독: "저에겐 첫 작품이라 다른 곳과 비교하긴 힘들 것 같다. 연출자의 의도를 존중하고 적극 지지해준다는 점에서 연출자에게 굉장히 좋은 OTT 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Q. 네티즌 평 중에 공감이 간 것이 있다면.
▶최항용 감독: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가끔 작품의 의도와 심지어 작은 디테일까지 잘 이해해주신 분들의 리뷰를 보면 감동적이기도 하고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리뷰는 한 유튜브 영상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지점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다. 작품에 참여한 분이 아니라면 알기 쉽지 않은 부분들까지 캐치하시는 걸 보고 정말 작품을 관심 있게 깊이 들여다 봐주셨구나 라는 걸 느꼈다.”
Q.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최항용 감독: “예상하시겠지만 영화 ‘에일리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에일리언’은 제가 초등학생 때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며칠간 악몽에 시달렸던 영화이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성인이 되어서 다시 보니 또 다른 것들이 보이면서 이 작품을 탐구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더 빠져들었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원작인 단편에서 주인공들을 달에 보낸 기업의 이름이 ‘wayland’이다. 에일리언에 대한 팬심으로 영화에 나오는 ‘weyland’에서 알파벳 하나만 다르게 바꿔서 사용했다.”
배두나, 공유, 이준, 김선영, 이무생, 허성태, 길해연, 이성욱, 강말금, 김시아, 유희제 등이 출연하는 8부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는 지난 달 24일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