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율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권율의 인생 캐릭터가 재탄생했다. 새해 첫 개봉 한국 영화이자 회색 지대에 선 비리 경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경관의 피'(감독 이규만)에서 마약 공장의 나영빈 사장 역을 맡은 그는 함께 캐릭터를 다듬어간 이규만 감독의 극찬을 이끌어낼 정도로 다른 결의 악역을 다시금 소화해냈다.
Q. 지난 이규만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권율 배우의 칭찬을 엄청 하더라. 이규만 감독님과 협업한 소감이 어떠한가?
감독님 시나리오를 받고 읽어보고 만났을 때 고민했던 지점들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영빈이라는 인물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이미지보다 설정값 자체가 더 강력했다. 법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느낌이 있었기에 내적, 외적인 연기 부분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강윤(조진웅 분)과 민재(최우식 분)가 부딪히는 충돌의 꼭짓점인 나영빈의 역할에 힘이 빠지며 충돌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Q. 또 다른 결을 지닌 악역을 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 같다.
(감독님이) 1차적으로 외적인 부분은 좀 더 증량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단단한 덩어리의 질감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셨기에 정해진 식단 안에서 체중을 불렸어야 해서 알람을 맞춰놓고 식사를 했다. 쉽지 않았던 부분들이 있었다. 연기적인 부분에서는 많이 고민했다. 나영빈 캐릭터를 만들면서 감독님과 훈련을 공유하고 검증을 해가면서 작업했다. 나는 마치 선생님처럼 감독님을 믿고 따랐다. 나영빈이 처해진 상황을 마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서 물속에 나를 풍덩 담그듯 그 스케치북에 나를 담갔다.
Q. 나영빈의 어린 시절부터 시나리오에 없는 전사까지 살펴보고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감정적인 몰입에 시간을 갖고 나영빈만의 대사들을 내가 만들고 싶었다. 거기에는 욕도 있었고 샤우팅도 있었다. 속삭이는 말, 저질스러운 말, 허세 부리는 말, 고급스러운 말 등 나영빈으로서의 말을 다 던진 것 같다. 처음 이 훈련에 접근했을 때는 두 시간 정도로 아무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부끄러움과의 싸움을 해나갔던 것 같다. 그 과정을 한두 달 하다 보니 나영빈으로서의 말을 뱉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더라. 텍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그런 발성 훈련, 감독님과 그 시간을 같이 투자해 주시고 같이 봐주셨다.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배우 권율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Q. 전작인 드라마 '귓속말', '보이스'에서 악역 연기를 해본 적은 있지만 다른 결의 악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영빈은 크게 생각을 하지 않는 인물이다. '귓속말'이나 '보이스'의 역할은 철두철미하게 계획된 자신의 시스템 안에서 주도 하에 가는 인물이었다면 나영빈은 언터처블하고 어떤 것에 망설이지 않는 느낌이 많았다. 그전에는 날카로운 칼날들이 수십 개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역할은 망치나 해머로 퉁퉁 치는 느낌으로 연기의 결에 접근했던 것 같다. 빠르고 매서운 느낌이 아니라 묵직한 느낌으로 접근했다.
Q. 이규만 감독이 평소에는 콘티대로 촬영을 하는 스타일인데, 나영빈 사장이 마약공장에서 박강윤과 부딪히는 신만은 즉흥적이었다고 하더라. 촬영장 비하인드가 있는가?
아직 기억날 정도로 그 촬영 날이 어려웠다. 나나 조진웅 선배님이 계획했던 느낌의 신에서 벗어났고 혼란스러운 지점이 있긴 했다. 이정표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오히려 나중에는 터뜨릴 수 있는 선 안에서 서로에게 밸런스를 맞게 했던 연기들이 그날의 신을 만들어줬다는 생각이다. 나나 조진웅 선배님이나 그 캐릭터에 담겨 있던 시간들이 뿌리를 잘 박고 있어서 캐릭터로서 큰 시너지를 보여줬던 것 같다.
이런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식단 관리를 계속하다가 한 번 정도 마음껏 치팅데이를 하는 느낌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철저히 관리하다가 한 번 마음껏 먹고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 했던 기회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계기점이 됐던 촬영이었다.
Q. 선배 배우인 조진웅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는데, 이외에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의 협업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박희순 배우님은 연기적으로 부딪힌 신은 없지만 같은 현장에 있었다. 워낙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리더십이 있으셨고 나한테 친구처럼 대해주셨다. 내 개그를 좋아해 줘서 "좋았어"라고 해주셨다.(웃음) 개그를 검증받고 있다. 현장에서도 스태프들이 좋아하는 배우 1등인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현장에 갔을 때 나이를 뛰어넘어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우식 배우의 경우, 같이 찍으면서 병아리 같고 귀엽고 동생 같았다. 패딩을 따뜻하게 입고 있는데도 패딩을 더 따뜻하게 입혀주고 싶은 친구다. 그런데 현장에 오면 눈빛이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현장에서의 몰입도와 자신만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끌고 가는 집중력을 보면서 그 친구가 사랑받는 이유를 알게 됐다.
박명훈 선배님과 사우나에서 있는 신은 처음 대면하는 거친 신이었다. 개인적으로 아쉽게 편집이 됐다. 박명훈 선배님 또한 어떤 것들을 던져도 다 받아낼 수 있는 대단한 내공을 가지게 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권율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Q. '경관의 피'의 특징은 팬층이 두꺼운 배우들이 다수 참여했다는 점이다. 본인도 팬층이 두꺼워서 팬들이 많이 보러 올 것 같은데 스코어에 대해서 어떻게 예상하는가?
배우들끼리 모이면 쓸데없는 이야기 많이 하지만 신기하게도 스코어에 대한 예측은 안 한다. 모이면 오징어볶음 먹었는데 비렸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을 한다.(웃음) 조진웅 선배님과 라디오에 나간 적이 있는데 스코어에 대한 공약을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 그저 한 분 한 분 사랑해 주신 관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 이게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다. 마음속으로는 다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Q. 새해 첫 개봉 한국 영화인 '경관의 피'를 비롯해 2022년도 열심히 일 하는 배우들 중 한 명일 것 같다. '며느라기2...ing'도 공개된 이후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거기서는 또 완전히 다른 얼굴을 지닌 역할이지 않나. 천의 얼굴인 권율 배우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 무엇인가?
영화를 개봉하고 배우들끼리 카톡 방을 만들었는데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가 지금 새해 첫 한국 영화 개봉작이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분 한 분의 관객들과 시작점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이 작품이 영화계가 기지개를 피는 시간에 도움이 된다는 자그마한 기대감과 믿음이 배우들 사이에서 더 확고해지는 것 같다. '경관의 피'도 많이 사랑해 주시고 좋은 미덕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일단 극장에 와주셔서 '스파이더맨'도 봐주시고(웃음), '경관의 피'도 봐달라. 나 또한 올 한 해 좀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활동하는 배우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