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새해를 맞아 처음으로 개봉한 한국 영화 '경관의 피'를 연출한 이규만 감독은 평소 범죄를 소재로 한 '리턴', '아이들' 등의 영화를 연출해오며 대한민국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져온 영화인이다.
그는 '경관의 피'를 통해 회색 지대에 선 비리 경찰의 이야기를 그려나가며 전작과는 또 다른 물음을 던졌다. 흑색과 백색 사이의 교집합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서 있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법한 인생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Q. 코로나 사태가 악화된 후 타 영화들은 개봉일을 미루는 가운데 새해 첫 영화로 '경관의 피'를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는데 계기와 소감이 궁금하다.
그 결단을 내렸던 순간이 떠오른다. 투자사, 배급사, 제작사, 나까지 쭉 고민을 했었다.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여건들이 있었고 작품 모니터링 시사에서 평가가 좋게 나왔다. '첫해를 여는데 누군가 선봉에 서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있었다.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가자는 생각이었다.
Q. '커터', '리턴', '아이들'을 비롯해 범죄 관련 영화들을 연출하고 제작해왔다. 범죄에 관련된 특정한 사건이나 소재에 대해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커터'는 제작을 했고 '리턴'과 '아이들'을 연출했다. '리턴'은 수술 중 각성에 관한 작품이었는데 다큐멘터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이들'은 워낙 유명한 사건이다. 두 사건 다 강력 사건이다. 그런 것에 대해서 관심을 나 말고도 많은 감독들이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인연이 닿아서 그런 작품들을 했었다.
Q. '경관의 피'도 비리 경찰이라는 흔한 범죄 요소가 들어간 작품이지만 색다른 전개가 이어진다.
'경관의 피'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강윤의 캐릭터가 눈에 들어왔다. 비리 경찰과 비리 경찰이 아닌 인물 사이에서 강윤의 포지션이 흥미로웠다. 그를 비리 경찰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비리 경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그런 텐션이 재밌었다.
Q. 그런 의미에서 작품 속에서 '회색 지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 않나. 흑이냐 백이냐를 논한다기보다는 회색 지대에서 우리가 얼마나 최선을 다할 수 있느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강윤이 말하는 회색 지대는 좁은 곳인 것 같다. 흑과 백이 교차하는 교집합이자 좁은 공간이다. 그곳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서있어야 한다는 것이 강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경찰이다. 그런 면에서 민재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인물이다. 대사에서 회색 지대라고 표현한 것도 현실적인 절차와 이상적인 신념 사이에는 갭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Q.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앞둔 한국 영화 '특송'도 있는데 이 작품 또한 범죄에 관한 이야기다. 타 범죄 영화들에 비해 '경관의 피'는 어떤 점들이 차별화됐다고 생각하는가?
관람객 분들이 남긴 글들을 봤는데, '다른 경찰 이야기'라는 평가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지점을 나도 동의하고 공감했다.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고민했는데 '경관의 피'에 있는 언더 커버 구조는 다른 영화에서도 공유된 구조이지만 그 구조를 가지고도 다른 이야기들을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적인 신념의 마찰 속에서 보이는 갈등과 딜레마 속에서 우리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지점이 다른 영화와의 차별점이라 생각한다. '경관의 피'라는 작품에 잘 빠진 수트를 입혀서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그 질문이 잘 다가갔기에 좋아해 주신 분들이 있었던 같다.
Q. '경관의 피'에는 든든한 두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배우 조진웅에 대해 "형사, 검사 조진웅은 진리다. 슈트핏 조진웅은 진리다"라는 칭찬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조진웅 배우의 캐스팅 비화가 궁금하다.
박강윤은 세련된 인물이다. 세련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데 조진웅이야말로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했다. 배우 조진웅은 많은 형사 역을 했지만 '경관의 피'에서는 어떤 영화에서도 없었던 조진웅 배우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완전히 다른 박강윤의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Q. 최우식 또한 전작들에서 악역 연기를 한 적 있지만 이번 작품처럼 감정선이 크게 변화하는 역은 처음이다. 최우식은 어떤 계기로 캐스팅하게 됐는가?
관객들이 민재의 눈을 통해서 사건을 따라갔어야 했다. 어떤 배우분들과 민재라는 인물이 어떻게 매치될까가 중요한 포인트였다. '거인'에서 보여줬던 예민한 연기, '마녀'에서 보여줬던 새로운 모습이 머릿속에서 조합이 됐다. 민재라는 역할은 강력계 형사고 유약해 보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인물이다. 최우식 배우가 연기하는 민재를 보고 싶었다. 최우식 배우가 그것에 성공한다면 많은 관객들이 그의 새로운 연기를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Q. 조연 배우들 또한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의 다른 레이어를 볼 수 있는 악역 연기를 선보이더라. 권율 배우의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권율 배우와의 작업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원래 배우분들하고 그만큼 시간을 들여서 함께 있지 못한다. 하지만 권율 배우와는 정기적으로 실제 연습을 했다. 나영빈이라는 역할이 해석이 조금만 더 평면적으로 되면 가짜같이 보일 수 있는 캐릭터다. 그런 면에서 사실적인 텍스처를 찾기 위해 껍데기가 아닌 내면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의 나영빈부터 둘이 찾아가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설정에도 없는 나영빈 엄마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감정적으로 더듬어가면서 나영빈을 찾아갔고 권율 배우가 스스로 흡수해냈다.
Q. 경찰 전문 배우라고도 불리는 박희순 배우의 역할도 지대했다. 그와의 협업은 어떠했는가?
정말 재밌었다. 이번 작품에서 치열하게 작업했다. 박희순 선배님은 어떻게 답을 찾을지 스스로 고민하고 그 정답을 찾아왔다. 캐릭터 또한 박희순 선배님을 통해서 재창조되는 느낌이 분명했다. 나도 첫 작업이라서 긴장하고 시작했는데 박희순 선배님이 워낙 인간적으로 훌륭하셨다. 스파링처럼 땀 흘리고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는 독특한 감독과 배우 관계가 된 것 같다.
Q. 배우들 간의 호흡이 좋다 보니 촬영장에서 깜짝 에피소드나 애드리브도 많았을 것 같다.
현장에서 많은 변수를 가지는 감독인 편은 아니다. 프리 프로덕션을 탄탄히 하는 편이다. 그때 약속된 것을 현장에서 지키는 편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콘티대로 찍지 않고 배우분들에게 연극하듯 상황만 던져주고 가자고 한다. 예를 들어, 나영빈의 마약 공장을 털었을 때 그가 비밀번호를 삼키는 장면은 거의 유일하게 콘티대로 가지 않은 시퀀스였다. 에너지대로 부딪히게 했다. 촬영 감독님께 동물처럼 스케치하게 했고 배우들도 동물처럼 붙었던 장면이다.
Q. 그러한 동물적인 스케치가 오프닝 도입부에서도 나온 것 같다. 혼란스럽게 비틀거리는 앵글 사이로 박희순 배우가 등장하는 신이다.
그 장면은 혼란스럽게 찍히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그 장면을 황인호 과장(박희순 분)의 회상 신으로 구성했었다. 회상은 백 퍼센트 선명하지 않다. 혼란스러운 느낌이 존재해야한다고 판단했었기에 그렇게 찍었는데 나중에 편집하면서 순서가 바뀌었다. 도입을 어떻게 시작할지에 대해 고민하다 회상이라는 것을 명명하지 않고 그 신을 오프닝으로 넣었다.
Q. 이러한 비하인드를 듣다 보니 역시 영화는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든다. 그동안의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한마디 남긴다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 스코어가 어떻게 될지 상관없이 지금 함께해 준 스태프분들이 눈앞에 다 지나간다. 내가 여태까지 만났던 어떤 스태프들보다 가장 프로페셔널하고 가장 긍정적이었다. 최고의 스태프들이었다.
Q. 배우들 간의 시너지, 그리고 스태프들의 열정까지. 이번 해를 장식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사태를 뚫고 극장가를 찾아올 관객들에게 한마디 남긴다면 무엇인가?
2022년 새해 첫 포문을 연 영화다. 개인적인 방역 수침만 서로 지킨다면 극장이라는 공간은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한국 관객들은 재밌는 영화가 있으면 극장에 찾아온다. '경관의 피'는 여러분들이 오셨을 때 후회하지 않고 통쾌함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한국 영화가 잘 될 수 있도록 응원 또한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