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오징어 게임’, ‘지옥’의 3연타석 홈런으로 한국콘텐츠의 위상을 만방에 퍼뜨린 ‘넷플릭스’의 2021년 마지막 작품은 SF '고요의 바다‘였다. '고요의 바다'는 인류생존의 필수자원인 물의 고갈로 황폐해진 근 미래의 지구, 특수임무를 띠고 달로 떠난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과 익숙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할리우드에서 SF를, 넷플릭스와 작품을 찍어본 배두나를 만나 ’고요의 바다‘의 수심(水深)을 들어보았다. 배두나 이번 작품에서 우주생물학자 겸 동물행동학자 송지안을 연기한다.
- 일단 공개 초반에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배두나: “그런 것에 신경 많이 쓰는 편은 아니다. 개인의 취향과 의견을 존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다는 평이 많이 올라오더라.”
-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최항용 감독의 단편과 비교했을 때 이번 작품은 어떤 차이가 있나.
▶배두나: “원작이 된 최항용 감독의 단편을 보았는데 그대로인 것 같다. 원작이 짧은 시였다면 넷플릭스 작품은 소설 같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고요의 바다]는 수면 아래에서 소용돌이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심리묘사를 따라가면 슬퍼지기도 하고 무서워지기도 한다. 그런 인간의 감정을 따라가는, 캐릭터에 집중되는 힘이 있는 드라마이다. ”
- [괴물]에서 활을 잡은 배두나여서 이 작품에서 [에일리언]의 시구니 위버 같은 여전사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설명을 좀 하자면.
▶배두나: “[에일리언]은 잘 모르겠고. 극의 초반에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안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언니(강말금)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이다. 과학자인 지안은 사회성이 없는 은둔형 외톨이이다. 어디에 있든 잘 어울리지 못한다. 언니를 잃은 뒤 공허감이 컸다. 세상에 대한 기대가 없다. 초반의 그런 톤앤매너가 유지되는 것이다. 첫날 찍을 때 울컥했다. 그리고 달에 도착한 뒤 그곳에서 아이 루나를 만나게 되면서 애틋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의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고요의 바다]는 장르에 대한 도전정신이 돋보인다. 힘들지는 않았는지.
▶배두나: “처음 시도하는 것이어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앞으로 만들 작품들의 레퍼런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의미가 될 것이다. 난 먼저 경험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고요의 바다]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이전에도 많이 겪어봤다. 먼저 경험을 해서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뿌듯하지 않을까요? 우주복을 풀로 장착하면 10킬로가 넘는다. 그게 어려웠다. 슈트가 다 붙어있는 것이니 화장실 갈 때 불편했다. 뭐, 그 정도쯤이야 몸이 힘들어야 간절한 연기가 나온다.”
-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배두나: “6부 인트로 신. 우주에 가기 전에 훈련받고 매일 인터뷰하는 회상 장면이 좋았다. 송지안의 내면에는 24시간 내 임무수행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내면에서 무언가가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또 한 장면은 루나가 무섭게 나타났다가 게이트에 다리가 끼어 우는 장면. 괴물처럼 포효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이처럼 우는 모습에서 그 친구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도대체 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야 생각이 들었다.”
- 현장에서의 배우들끼리 호흡은 어땠는지. 제작자 정우성은 현장에 자주 나왔는지.
▶배두나: “배우들과의 케미가 좋았다. 작품에서는 심리적으로 힘든 상태를 유지해야하데 현장은 밝았다. 현장 사진을 보면 웃는 장면이 많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다보면 한두 명 싫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 더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였다. 그 중심에는 공유, 김선영 배우가 있었다. 정우성 배우는 거의 매일 촬영장에 나왔다. 그런 제작자는 처음 봤다. 마치 스태프 같았다.”
- 루나를 연기한 김시아 배우에 대해서.
▶배두나: “이런 이야기하면 시아가 부담을 느낄 수도 있어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정말 김시아는 연기에 대해서는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매번 ‘천재다 천재’라고 말했다. 연기를 너무 잘한다. 기술적으로 영악하게 계산하고 연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담대하고 대담하게 연기를 해낸다. 경험이 많이 쌓인 어른 배우들이 할 수 있는 대담함을, 핵심만 뽑아 연기한다. 내가 김시아의 1호팬이다.”
- [고요의 바다]가 던지는 화두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배두나: “이 드라마는 많은 질문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환경문제를 비롯하여 윤리의식 등을 다룬다. 개인적으로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를 희생해서 인류를 구한다거나 이런 것을 생각해 본적이 없으니. 이번 작품을 하며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 ‘센스8’부터 시작하여, ‘킹덤’(시즌1,2), ‘페르소나’에 이어 ‘고요의 바다’까지. 넷플릭스 최다 출연 한국배우인 것 같다. 넷플릭스와의 작업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넷플릭스 출연 다경험자로서 노하우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는지.
▶배두나: “나에게 넷플릭스 출연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없었다.(하하) 넷플릭스가 창작자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것이 좋았다. 20년 이상 영화계에 있으면서 그런 모습을 본다는 것이 놀라웠다. 창작자를 믿고 맡기겠다는 그런 마인드가 중요하다. 창작자는 머릿속에 있는 것을 다 펼친다. 그리고 미국에서 넷플릭스 작업할 때와 한국에서 작업할 때의 특별한 차이는 없다. 있다면 여기가 조금 더 가족 같다는 정도? 예산을 제외하고는 같다.”
- 이른바 ‘월수’에 감염된 후 물을 마구 내뿜는 배우 연기는 어떤 식으로 촬영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
▶배두나: “특수효과팀에서 특수한 장치를 하나 만들었다. 호수를 목에 연결하고, 그곳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도록 했다. 수압 조절을 해가며 토하는 물의 양을 조절했다. 수찬 캐릭터가 그걸 처음 할 때 중요했다. 그걸 레퍼런스 삼아 다음 장면도 찍을 수 있었다. 누워서 하다 보니 물이 코로 들어가고, 귀로 들어가고 그랬다. CG로 찍은 부분도 있다.”
- 달 장면에서의 리얼리티와 관련하여, 성큼성큼 걷는/뛰는 장면은 어떤 식으로 준비했나.
▶배두나: “촬영 들어가기 전에 와이어 테스트를 몇 번 했다. 달에서의 중력이 지구의 1/6이라고 하지만, 다큐에서 보는 것같이 팡팡 뛰어다닌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감독은 숨 쉬기가 곤란하고, 힘들게 앞으로 전진해야한다는 상황을 전해주고 싶어 했다. 촬영장 여건상 모두가 와이어를 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한국형 SF에 출연한 소감. 제일 즐겁게 촬영한 장면이 있다면?
▶배두나: “우주복을 처음 입는 순간이 신났다. 그런데 그 기분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아, 현장의 모든 사람이 가장 신나했던 장면은 발사 장면이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이렇게 본격적인 로켓 발사 장면이 나오다니. 그 장면 찍을 때 제작자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 2022년 새해 소망이 있다면.
▶배두나: “요즘 들어 부쩍 나한테 잘해주자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행복해지는 것을 찾고 싶다. 이전에는 그러질 않았는데 말이다. [고요의 바다]에서 언니의 환상을 만나는 신에서 ‘왜 내 옆에 있지’하는 말이 그냥 튀어나왔다.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찾고 싶다. 스트레스 안 받고, 웃으면서 살고 싶다. 마음 같아선 쉬어가고 싶다. 그런데 또 작업한다. 1월에 바로.”
‘언니간 남긴 흔적’을 찾아 달에 간 배두나의 극한의 모험을 담은 넷플릭스 SF [고요의 바다]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공개됐다. 전체 8부작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