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의 곽재용 감독과 2021년의 곽재용 감독의 감성은 변함이 없다. 1990년 데뷔작 ‘비 오는 날 수채화’를 본 관객이라면 2021년 세밑에 개봉된 ‘해피 뉴 이어’를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전지현의 ‘엽기적인 그녀’(2001)와 손예진의 ‘클래식’(2003)을 만들었던 곽재용 감독을 (화상으로 만나) 코로나 시국의 극장가에 특별 배송한 영화 ‘해피 뉴 이어’에 대해 들어보았다.
-일단 워낙 화려한 캐스팅이다. 그와 더불어 깜짝 등장하는 카미오의 면면도 눈길을 끈다. 원진아의 어머니로 출연하는 분이 최수민 배우이다. (차태현 배우의 어머니이다)
▶곽재용 감독: “이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 ‘엽기적인 그녀’ 재개봉 GV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차태현 배우에게 말씀 좀 전해 달라고 했다. 연기를 엄청 잘 하시는 분이시다. 옛날에 ‘엽기적인 그녀’ 때 잠깐 인사드린 적이 있다. 흔쾌히 응해주셨다. 촬영 현장에 태현이랑 아빠랑 형까지 가족들이 다 놀려오셨다.”
- 이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연말 이벤트 무비로 만들 생각이었는지.
▶곽재용 감독: “개봉 시기를 정확하게 잡을 수는 없지만 연말에 정말 마음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코로나 시국에 꼭 필요한, 가슴 설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 메인 캐릭터가 14명이나 된다. 처음부터 이런 조합이었는지. 중간에 큰 변화가 있었나. 빠지거나 더해진 캐릭터가 있는지 궁금하다.
▶곽재용 감독: “처음부터 일곱 커플의 이야기를 생각했었고 그대로 진행되었다. 물론 처음 시나리오 준비할 때는 좀 더 많았다. 각색하며 한 커플 정도를 뺐다.”
- 감독님 감성은 데뷔 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올드하다고 해야 하나.
▶곽재용 감독: “영화들 만드는 과정은 검증(檢證)의 반복이다. 내가 어떤 색깔을 가졌더라도, 영화라는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올드하지는 않다.”
- 예를 들어 고등학생 커플 이야기에서는 요즘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하이틴과 비교하여 대사조차 순둥순둥하다.
▶곽재용 감독:“아, 원래는 ‘졸라 이쁘지 않냐?’ 이런 대사도 있었다. 찍으면서 그런 대사는 들어냈다. 영화를 깨끗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 걸 두고 올드한 감성이라고 하면 서운하다.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검증 받으면서 깨끗하게 만든 것이다.”
(감독은 이 부분에서 좀 더 신중하게 이야기를 더한다) “요즘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어떤지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양한 계층들이 볼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보고 따라하면 곤란할 것이다. 영화에서 편집된 것 중에 이런 장면이 있다. 핫팩 전달하는 장면에서 ‘손이 곱으면 안 되니까’라고 말하는 신이 있다. ‘손이 곱다’는 말을 모르더라. 요즘 쓰이는 말이 얼마나 갈지 생각해 보았다. 전작 [시간이탈자]에서 임수정의 대사 중에 ‘레알?’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원래 시나리오에도 있었고 현장에서도 그렇게 찍었다. 편집하고 녹음하는데 ‘레알’이라는 말이 너무 촌스럽게 느껴졌다. 언어의 사용에서 변화가 빠르다는 것이다. 편집 끝난 상태에서 ‘레알’을 ‘네네..’로 바꾸었다. 요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 그런 리얼리티가 필요하겠지만 온가족이 같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원진아의 극중 이름이 백이영이다. 이유가 있다.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둔 게 있는지.
“‘수영’과 관련해서 ‘아영’이라고 지었다. 다른 케이스가 있다면 강하늘의 이름이 ‘재용’이다. 내 이름을 쓴 것이다. 이혜영 배우는 캐서린이지만 원래 이름은 봉엽이었다. 촌스러운 이름으로. 그런데 ‘백이영’ 이름에 대해서 관객들이 그 의미를 빨리 캐치해 주어서 기쁘다.”
- 특별출연에 ‘강신성일’ 배우 이름도 등장한다.
▶곽재용 감독:“이동욱 배우가 캐비닛 열 때 테이블 위에 신성일 선생님 사진이 있다. 그 다음 신에서 사진 옆에 카드에도 등장한다.” (강신성일 배우의 아들 ‘강석현’ 배우도 이 영화에서 ‘약사’로 특별출연한다. 감독의 데뷔작 ‘비 오는 날 수채화’ 출연을 인연으로, 그 인연이 또 이어진 셈이다)
- 감독님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이후 중국과 일본에서도 작품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드와 코로나로 주춤하지만 당사자로서 ‘한류’에 대한 소감은?
▶곽재용 감독: “중국과 오래 작업했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콘텐츠를 좋아한다. 지금은 한한령 때문에 막혀 있지만 영화인들의 진출만 막힌 상태이지 콘텐츠는 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도 한국콘텐츠에 대한 판권 문의가 있고, ‘오 문희’도 정식 개봉했잖은가. 아직도 많이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히 있다. 엄격한 검열 같은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시장은 크다고 생각한다.”
- ‘해피 뉴 이어’는 14명의 메인 캐릭터가 출연하니,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처음부터 영화가 아니라 OTT용 드라마로 확장해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곽재용 감독:“아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영화로 기획되었다. 물론 티빙에서는 편집에서 잘린 장면을 ‘확장판’으로 보여줄 것이다. 준비를 하고 있다. 어느 때가 되면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극장 개봉을 당연시하던 감독입장에서 OTT로 공개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없는지.
▶곽재용 감독: “개봉방식에 대한 불안감은 없다. 극장이 되었든 티빙이 되었든 공개되어 보시는 분이 좋아해주었으면 한다. 오히려 OTT로 공개되면서 BP가 낮아져서 안정적인 면도 있다. 극장과 OTT를 통해 같이 공개되는 방식에 기대를 걸어본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극장에 더 많이 몰리지는 않겠지만 아마 앞으로 더 많이 시도될 것이라 본다.”
- ‘해피 뉴 이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연말연시는?
▶곽재용 감독: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제일 좋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에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와이프가 중국에 왔었다. 제일 중요한 게 가족이 같이 지낸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 영화는 호텔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해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연말 분위기라면 화려하다. 요즘은 호캉스라는 말도 있다. 럭셔리한 멋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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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용 감독에게는 멜로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다른 장르는 관심이 없는가.
▶곽재용 감독: “물론 장르 자체를 가리지는 않는다. 대신 피가 많이 나오는 좀비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름 사극이나 스릴러 굉장히 좋아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는데 신통치 않았다. 멜로를 위주로 여러 가지 보여준 것이 관객과 통했다. 그렇게 한 가지(장르)를 하다보니 능숙해지고, 표현하고자하는 것을 더 잘 묘사하는 것 아닐까.”
- 요즘 OTT가 대세가 되어가는 것 같다. 감독님의 생각은 어떤지.
▶곽재용 감독: “OTT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고 있다. 좋다고 생각한다. 제작사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감독으로서는 공간에 대한 구분이 없어지고, OTT를 통해 드라마 버전 만들면 시리즈로 보여줄 것이 많아서 좋을 것 같다.”
- 중국과 일본에서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곽재용 감독: “중국에서의 작업은 코로나 중단된 상태이다. 일본에서도 작품을 하면서 연락하는 지인이 있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작업하는게 제일 좋다. <여친소> 개봉할 때 홍콩과 중국에서 성공했었다. 배우들과 함께 프로모션 다녔었다. 그때도 그런 생각했었지만 한국에서 잘 되는 게 제일 좋다. 외국에서 잘 되는 것도 좋지만. 우선 한국에서 잘 되는 것이 가장 해피한 일이다.”
- 감독님은 영화를 만들면서 어디에 가장 초점을 맞추는 편인가.
▶곽재용 감독: “아무래도 감성을 전달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많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그 그림을 동화처럼 묘사하려고 노력하고, 배우들에게서 아름다운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 한지민 배우가 정말 예쁘게 나왔다. 그러고 보니 전지현(엽기적인 그녀), 손예진(클래식) 등 여배우의 리즈를 만들었다.
▶곽재용 감독: “예쁜 배우가 예쁘게 나오는 게 아무렇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다. 캐릭터에 따라 평범하게 나올 수도 있다. 예쁘게 나오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서로 노력해야한다.”
한지민부터 김영광, 강하늘, 이동욱, 임윤아, 원진아, 이혜영, 정진영, 서강준, 이광수, 고성희, 이진욱, 조준영, 원지안 등이 출연한 곽재용 감독의 ‘순한’ 멜로 <해피 뉴 이어>는 지난 29일 극장과 티빙에서 동시 공개되었다.
[사진제공=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