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드라마스페셜 2016시즌 네 번째 작품으로 지난 10월 16일 방송된 최윤석 연출의 <즐거운 우리집>은 우리나라 TV드라마시간에서는 만나 보긴 힘든 SF장르였다.
세정(손여은)은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정해진 시간에 남편은 국화꽃을 건네주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펼친다. 잘 생기고, 말 잘 듣고, 섬세한 남편 성민(이상엽)은 세정이 만든 사이보그이다. 자신이 원하는 최선의 상태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겉보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행복. 그런데, 성민의 메모리에 이상이 생겼는지 ‘지직’댄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시절, 배려심 많은 선배 성민은 학과에서 왕따 신세였던 세정에게 손을 내밀었던 유일한 존재.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의 성민을 사이보그로 살려낸 것이다. 세정의 바람과는 달리 둘의 과거를 아는 지아(박하나)가 등장하면서 ‘즐거운 우리집’과 ‘만들어진 행복’은 위기에 처한다.
최윤석 피디는 메리 셸리가 쓴 클래식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자신의 피조물이 괴물이 되어 떠나자 형언할 수 없는 공허감, 배신감에 빠진다. 최 피디는 ‘부자관계’와 다름없는 박사와 괴물의 관계를 현대과학의 진화 속에 연인관계로 비틀어본다. 세정은 자신을 이해해주며 손을 내민 유일한 인간을 자신의 곁에 영원히 두고 독점하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최피디는 많은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부부라는 관계에서 파생되는 여러 정신적 공허감과 물리적 배우자의 위치를 완벽하게 채워주는 동시에, 미래의 가족구성원에 대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메리 셸리가 소설을 썼던 시절에 던져준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복수에 대한 고뇌는 옅어진다. 창조주와 피조물이 가지는 상하관계는 무너졌다.
짧은 드라마에서 배우들은 최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상엽은 인간이 되어버린 사이보그의 감정까지 담아냈고, 손여은은 불안한 인간의 모습을 사이보그에까지 완벽하게 전이시킨다.
<즐거운 나의 집>은 마지막 장면은 오래 기억될 명장면이다. ‘네 명의 가족’이 둘러앉아 만찬을 즐긴다. 어머니만이 과장되게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그 순간은 마치 어머니가 가장 유쾌하게 프로그래밍된 사이보그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카메라가 뒤로 물러서면서 손여은의 등에서 (사이보그임을 나타내는) 빨간 색 불이 점멸한다. 예상한대로 세정도 새로운 삶을 얻은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레플리컨트처럼. 시청자는 새로운 가족관계에서 안주하는 삶의 결정체를 목도한다.
<즐거운 나의 집>은 KBS드라마스페셜의 소재의 폭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이야기의 장을 펼친 가작이다. (박재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