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우리의 믿음이 그려낸 가상의 세계일까, 아니면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일까.
지난 11월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감독 연상호)은 서울 한복판에 지옥의 사자들이 출현하며 벌어지는 사회의 모습들을 가감 없이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극중 새진리회 의장인 정진수 역을 맡은 유아인은 이성과 광기를 오가는 연기로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Q.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 역을 맡았다. 이 역할에 대해 가장 매료됐던 부분은 무엇인가?
내게 정진수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최초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초의 고지를 받은 후 20년 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호기심을 굉장히 자극했다. 유일무이한 존재로 표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Q . '지옥'에서 맡은 역할, 정진수는 광기와 이성을 오가는 연기가 돋보이는 역할이다. 연기를 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궁금하다.
목표는 강렬함이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소극적이고 나긋나긋한 표현을 하려고 노력했다. 힘을 많이 빼려고 노력했다. 유아인의 모습이 비슷비슷할 수 있지만(웃음) 전에는 들려드리지 못했던 소리, 톤을 선보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Q. (초반부가 재밌어야 후반부까지 보는 시청자 특성상) 1,2,3화를 끌어가는 역할이라 작품의 첫 시작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에 있어 연기 부담이 있었을 것 같은데, 촬영에 임하는 심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그 어떤 작품보다 현장에서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주인공으로 불리긴 하지만 출연 분량은 주인공들 중에 가장 적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 몰입감을 끌고 가야 하는 강한 힘을 필요로 하는 룰이다 보니 등장 신이 적은 만큼 한 신 한 신의 무게가 굉장히 강하게 다가왔다. 매 신에 있었던 미션, 목표가 있었는데 매 순간 그것을 적절하게 성취하지 못하면 정진수라는 인물이 무너질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주어진 신을 다 긴장하면서 임했다.
Q. 넷플릭스와의 협업은 어떠했는가?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나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드라마가 방영되기를 기다리는 마음, 극장에서 개봉하길 바라는 마음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들었다. 하나씩 오픈되는 것도 아니고 전편이 공개가 될 것이고 한국 관객분들만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이 작품이 공개되는 것이다 보니 어떤 반응들이 다가올지 우려 반 기대 반의 감정이 있었다.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내주시고 계신데 이것들을 뭐라고 정의 내리거나 정리하기에는 힘들 정도로 새롭게 겪는 느낌이다.
Q. '오징어 게임'도 그렇고 이번 작품 또한 해외 반응이 뜨겁다. 한국 콘텐츠의 역량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들의 후광이 어느 정도는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기회 속에서 만나게 된 작품이 세계의 시청자분들에게 한국에서 다양한 작품이 나오고 있고 이 정도 수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반가움으로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옥'이 무겁기만 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락적이기도 하고 들여다보면 묵직한 메시지도 있는 작품이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해외 반응이 있었는가?
어떤 외신에서 썼던 비평 기사였는데 '지옥은 단기적인 흥행을 지금 이루고 있지만 10년이 흘러도 회자될 작품이다'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 부분이 상당히 반갑고 감사했다. 이 작품이 얼마나 더 회자되고 부가적인 이야기들을 생성해 내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느냐가 작품의 가치가 될 수 있다.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Q. '지옥'의 다양한 장면을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 있었는가?
뉴스에 등장해서 '새로운 세상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인데 그 무게를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하면서 의외로 어려웠던 장면은 민혜진 변호사와의 만남에서 이상한 농담을 던지는 신이다. 현장에서 받아서 대사를 소화했는데 정진수라는 인물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농담이었다. 진지함 속에서 아주 엉뚱하고 기묘하게 던지고 싶었던 과정을 밟고 싶었다. 그것이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몰입됐던 장면은 3화 엔딩에서의 정진수의 고백 장면이다. 그 장면은 나 역시도 '어디까지 몰입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아주 깊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Q. 전작에 비해 대사가 굉장히 많은 역할이다. 힘든 부분은 없었는가?
전작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살만 쪄가지고 움직이기만 했으면 됐는데 (웃음) 이 작품은 대사로 처리해야 하는 장면이 많았다. 현장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잘 외워지는 대사가 있고 잘 안 외워지는 대사가 있다. 이번 작품은 아무리 긴 대사가 있어도 잘 받아들여졌다. 잘 쓰여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Q. 얼마 전 박정민 배우 인터뷰에서 유아인 배우에 관한 언급이 나왔었다. 가장 서로에게 많이 한 말이 "오셨어요?"라고 할 정도로 서로 많이 가까워지지 못해서 아쉽다고 이야기하더라.(웃음) 혹시 앞으로 박정민 배우와 좀 친목을 다져볼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하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배우고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인데 "오셨어요?", "안녕히 가세요"밖에 없어서 아쉬웠다. 현장에서 만나지도 못했다. 그래서 굉장히 아쉽다. 많은 분들이 박정민 배우님 연기를 좋아해 주시고 나도 그렇다. 꼭 한 번 같이 연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부로 나에게 막 해줬으면 좋겠다.(웃음) 감독님이 박정민 배우한테는 반말하고 나한테는 존댓말을 해서 소외감을 느낀다. 나를 정진수로 생각하고 어렵게 대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웃음)
Q. 정진수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서 '지옥'에 그려진 새진리회의 세상은 어떻게 보였는가?
굉장히 이상한 사람들이 이끄는 세상이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통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우리로서 존재해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지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옥은 모두가 상상하지만 실제로 다녀와 본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모두가 추측하고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죽어서 가서 고통을 받는 곳을 지옥이라는 개념과 연결시킨다. 작품 '지옥' 속의 지옥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세상에서도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믿음이나 신념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