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스타워즈’속 홀로그램 같은 천사가 나타나서 뜬금없이 “당신은 5일 후, 몇 시 몇 분에 죽습니다. 지옥에 갈 것입니다.”라고 다짜고짜 죽음을 ‘고지’한다면 남은 닷새 동안 당신의 삶은 평온할까? 그리고 정확하게 닷새 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시무시한 형상의 지옥사자가 나타나서 당신을 불태워 죽여 버리는 ‘시연’을 행한다면? 이것을 본 세상 사람들은 착하게 살려고 마음먹을까?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고, 혼란을 틈타 부흥한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뒤엉켜 사투를 펼치는 미스터리 판타지 드라마이다. [부산행]과 [반도], 드라마 [방법], 그리고 오래 전 [돼지의 왕]와 [사이비], 그리고 더 오래전 단편 [지옥: 두개의 삶]을 그리고 만들었던 연상호 감독을 만나 넷플릭스와 함께 지옥을 만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넷플릭스와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을 선보인다. 그리고, 글로벌한 주목을 받고 있다.
▶연상호 감독: “처음 넷플릭스 이야기할 때는 이 정도 반향을 불러일으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마이너 취향의 이야기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반응을 보인다는 게 창작자로서는 기쁜 일이다.”
Q. ‘지옥’이라는 단죄, 고지와 시연의 방식에 대한 설명을 한다면.
▶연상호 감독: "죽음이란 인간에겐 숙명과도 같다. 작품 속 ‘고지’와 ‘시연’ 같은 모티브가 주어진다면 인간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차이는 정진수 의장(유아인)와 배영재 피디(박정민)의 차이에서 알 수 있다. 정진수는 ‘평균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신념을 갖고 있고, 배영재는 다수의 정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이 옳은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Q. 만화를 영상화할 때 어려웠던 점은.
▶연상호 감독: “매 장면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 브리핑을 했다. 정해진 큰 틀에서 배우들이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배우들이 모두 세심하게 연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연극 무대의 관객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장에서의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까. 후반 작업하며 스태프와 그 점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Q. 죄 지은 자를 징벌하는 디스토피아적 비주얼과 함께 전체적으로 ‘키치’함도 느껴진다. 지옥의 사자, 화살촉, 새진리회 의장 등의 묘사가 그렇다.
▶연상호 감독: "어려서부터 서브컬쳐 장르의 애호가였다. 피터 잭슨 감독의 ‘배드 테이스트’ 같은 영화나 일본 비디오영화의 매니아였다. 이번에 [지옥]을 하면서 웰메이드를 지향하면서도 그런 요소를 잘 살려보고 싶었다. 90년대 일본영화를 보면 키치한 이미지가 많다. 츠키모토 신야의 ‘철남’ 같은 걸 보며 열광했었다. 웹툰을 그릴 때도 그런 포인트를 잡은 것 같다.“
Q. 만화에서 영화로 옮기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연상호 감독: “오프닝 신에 공을 들였다. 규모가 꽤 컸다. 커피숍부터 시작해서 길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적합한 곳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힘들었다. 세트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지옥사자가 1호 희생자를 처단하는 장면 등은 따로 오픈 세트를 만들었다. 세트에서 만들어진 많은 장면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잘 구현된 것 같다.”
Q. 노점상 박정자를 연기한 김신록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캐스팅 과정과 부활 이후 속편 연결에 대한 구상이 있다면.
▶연상호 감독: “김신록 배우는 드라마 [방법]할 때 처음 만났다. 백소진(정지소)의 엄마 석희 역을 맡았었다. 김용완 감독이 추천했다. 편집본을 보면서 소진의 엄마가 이렇게 많은 결을 가지고 있었던가 싶은 정도로 세밀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팬이 되었고 이번에 출연을 부탁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엄청난 초자연적인 환상이 일어난다. 후속 이야기에서는 방황하는 인간의 군상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고 그 이후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는 이익단체와 사람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Q. 단편 ‘지옥: 두 개의 삶’이 2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확장되었다. 평소 아이디어를 계속 숙성시키나.
▶연상호 감독: “단편 [지옥: 두개의 삶]은 영화가 뭔지도 모를 때 만든 작품이다. 인터넷에서 조금 인기를 끌어 파트2를 만들면 상황이 좋아지고 다음 작품을 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원했던 비전을 실현해줄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이 시리즈를 여러 가지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환경 자체가 따르지 못해 멈춘 것 같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여러 장르물을 하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옥]에서 보여준 고지와 시연, 설정이 굉장히 유니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는데 괜찮다고 생각되었다.”
Q. 지옥사자의 형상, 목소리가 뜻밖에도 정지소였다.
▶연상호 감독: “우리가 지옥사자라 부르고 있지만 혐오 같은 것으로 똘똘 뭉친 존재일 것이다. 이 작품은 우주적 공포를 다룬다. 미지의 존재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천사의 존재를 명확하게 설명하면 그 매력이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작품 외적으로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숨겨진 요소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부산행’에서 심은경이 첫 번 째 감염자 역으로 나온 것처럼 이번에는 정지소에게 천사 역을 부탁했다. CG로 스캔하고, 목소리를 녹음한 후 여러 가공 단계를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나온 것이다.”
Q. 화살촉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린다.
▶연상호 감독:“이동욱(김도윤 분)은 히키코모리 같은 존재이다. 어디 여행 갔다 사다준 인디언 모습으로 방송을 한다는 설정이었다. 영상화 작업을 하면서 이게 글로벌하게 나가면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원작(웹툰)에서 수정을 했다. 기본적으로 이동욱은 화살촉의 프로파간다를 펼치는 스피커 역할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스피커로서, 시끄러운 존재로 설정했다.”
Q.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연상호 감독: "정진수 의장을 연기한 유아인은 굉장히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연기한다. 감독이 원하는 모습을 명확하게 포착하면서도 자기 색깔로 자유롭게 연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배영재 피디는 평범한 캐릭터로 비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박정민 배우는 그 평범함을 정말 새롭게 연기해내더라. 연기 천재가 맞다.“
Q. 아이를 살린 이유가 있다면, 원진아 배우의 역할은 고구마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호러의 방식에서 비틀린 부분이다.
▶연상호 감독: "원진아 배우가 한 역할이 고구마 역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아기를 살리는 것은 극에서 아주 중요한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Q. 웹툰에서는 양익준의 아들이 등장하는데 영화에서는 딸로 바뀐다. 이레가 연기했다.
▶연상호 감독: "이레 배우는 [반도]에서 같이 작업했었다. 현장에서 봤을 때 이레는 뉴 타입의 배우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모습의 연기 결을 가진 배우이다. 원래 ‘아들’ 역을 캐스팅할 때 이레가 생각나서 성별을 바꾼 것이다. 현장에서 내가 개떡같이 디렉션을 내려도 찰떡같이 연기하더라. 자신의 엄마 살인범을 잡을 때 울면서도 웃으면 좋지 않을까 했더니 ‘예?’하더니 그렇게 연기하더라. 완전 뉴타입이다.”
Q. TV드라마도 해봤고, 넷플릭스도 해보셨으니, 작품을 만드는데 있어서 PPL에 대한 의견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연상호 감독: "한국 드라마 제작환경에서 제작자가 제일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부분이 PPL이다. 계약조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드라마 [방법]의 제작사인 클라이맥스스튜디오 쪽에 PPL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었다. [방법]은 PPL없이 완성된 케이스다. 제작사로서는 큰 손해였다. 지금 만들고 있는 드라마도 PPL없이 진행하고 있다. 제작사에 고맙게 생각한다. PPL이 작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는 그런 걸 전혀 신경쓸 일이 없다.”
Q. [지옥] 후속편은 어떻게 진행되나.
▶연상호 감독:"최규석 작가와 같이 하는 것이다.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다. 둘이서 다음 이야기는 웹툰으로 내기로 한 것이다.”
Q.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에 대한 힌트를 주신다면.
▶연상호 감독: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오프닝이 엄청나게 충격적일 것이란 것. ’지옥의 사자’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나올 것 같다. 박정자(김신록)의 부활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틈틈이 ‘시연’과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풀어갈 생각이다. 새로운 권력을 잡으려는 세력 역시 등장할 것이다. 그런 갈등 속에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가 포인트가 될 것 같다.”
Q. 넷플릭스(혹은 제작사)와 계약에서 [지옥]이 성공할 때 후속편 제작 IP관련 언급 같은 것이 있는지.
▶연상호 감독: "[지옥]은 만화가 원작이다. 원작 아이피는 저와 최규석이 갖고 있다. 넷플릭스는 영상화에 대한 퍼스트 권리 정도를 가지고 있다. 넷플릭스가 [지옥]의 후속편을 안 하겠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원작권이 있으니 다른 데와 협의할 수 있는 상황이다.“
Q. 향후 계획은
▶연상호 감독: "개인적으로 나는 프리랜서라고 생각한다. 언제 일이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프리랜서의 숙명이다.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성실하게 일을 하고, 나중에 일이 없으면 미련 없이 이 판을 떠나겠다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이 마지막이 되더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늘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경우는 큰 성공, 뜻밖의 반응을 얻기도 하고, 어떨 때는 작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한동안은 영화 밖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흥행) 결과에 마음을 두고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데 마음 두기보다는 영화 안에만 마음을 두기로 했다.”
연상호 감독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뒤에도 [지옥]에 대한 관심은 끊이질 않고 오히려 글로벌하게 높아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파격적인 드라마다. 지금은 ‘오징어 게임’이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두 드라마 중 10년 후에도 회자될 작품은 ‘지옥’일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포브스'는 ‘지옥2’와 관련하여 “연 감독이 넷플릭스와 작업에 만족했기 때문에 시즌2를 넷플릭스와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며, 넷플릭스 역시 연 감독과 시즌2를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연 감독이 어떤 선택을 할지 넷플릭스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