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이 최근 글로벌 차트에서 탑을 차지했다. [오징어게임]에 이어 다시 한 번 K콘텐츠 파워를 과시한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 [부산행]으로 K좀비를 널리 알린 인물이다. 그런데, 연상호 감독은 그 전에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으로 꽤 호평을 받은 애니메이터이다. [지옥]이 넷플릭스에 공개되기 전에 두 권의 단행본으로 먼저 세상에 나왔다. 연상호와 최규석이 그리고 쓴 만화책 [지옥]은 넷플릭스 [지옥]의 원형이다. 그런데, 이 [지옥]은 연상호 창작세계에서 꽤 오래된 프로젝트이다. 그가 대학(상명대 서양학과)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다는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연상호 감독의 단편 [지옥: 두 개의 삶]은 두 편의 단편이 묶인 연작이다. 연 감독 말로는 처음부터 연작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단다. 첫 번째 작품이 10분짜리였고, 극장 개봉을 위해서는 30분은 되어야할 것 같아서, 두 번째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여하튼 특이한 제작방식이다.
[파트1]은 남자와 지옥의 이야기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극한의 상황에 몰린 남자를 보여준다. 남자의 내레이션이 시작된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듯한 존재감 제로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의 앞에 천사의 형상이 나타나서는 한다는 말이 이렇다. “너는 오전 1시 50분에 죽는다. 너는 지옥으로 간다. 지옥의 강도는 어쩌구....” 이런 신의 말을 전해 듣게 될 경우 어떤 선택을 할까. 도망갈까? 일단 도망쳐 본다. 그런데, 평소 회사에서 자기를 못살게 하던 홍과장을 만난다. 홍과장도 같은 고지를 받았단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자 세 명의 지옥사자가 나타나서 먼저 홍과장의 피부를 벗기고, 끝내 참수시킨다. 그 끔직한 장면을 눈앞에서 본 남자 앞에 또 천사가 나타난다. “도망가고 싶니? 기회를 주마. 대신 잡히면 더 끔찍한 지옥에 가게 될 거야.”란다. 남자는 이제 더 끔찍한 지옥을 피하기 위해 끝없는 도망을 시작한다. 끝나지 않을 공포!
[파트2]는 여자와 천사의 이야기이다. 이번엔 평범한 미술학원 강사 앞에 천사가 나타나서 “당신은 5일 뒤에 죽는다. 천국에 갈 것”이란다. 믿어야하나? 남은 5일간 뭐 하지? 사진첩을 뒤적인다. 천국에 가면 이 모든 기억을 잊게 될 것이란다. 왜 이리 일찍 죽어야하지? 남친은 도망가라고 그런다. 마지막 순간, 도망가겠다고 다짐하고 남친의 집에 갔더니, 다른 여자와 있다. 분노로 둘을 죽인다. 천사가 나타나 계시를 바꾼다. “당신은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새 예언과 함께 지옥사자가 달려온다.
[지옥 두 개의 삶]은 연상호의 ‘지옥관’을 잘 보여준다. 물론 전제는 사후세계가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들은 지옥을 끔찍이도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정확한 시점에 죽을 것이고, 지옥에 갈 것’이라는 신의 계시를 받게 될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두려움이 지배할 것이다. 극도의 공포감은 일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도망가려고 발버둥치거나, 신을 저주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그 전에 자살하려고 할 것이다. (연 감독은 파트2에서 치밀한 장치를 덧붙인다. 자살하더라도, 지옥사자는 나타나서 징벌한다!)
넷플릭스 [지옥]은 결국 연상호 감독이 20 년 전 그린, 구상한 지옥도의 연장선이며 확장도이다. 인간은 ‘고지된 죽음의 시간’을 두려워하고, ‘지옥’에 빠지지 않기 위해 종교에 의지할 것이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절망하며, 시계를 바라다 볼 것이다. 자기가 언제 죽을지 안다면, 그것도 지옥사자의 영접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울까. 유아인이 그랬던 것처럼, 아기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예고된 죽음의 시간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한 본모습을 보여주는 실험극이다.
연상호 감독은 [지옥 두 개의 삶]을 ‘로토스코핑’ 방식으로 만들었다. 실사촬영분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현실적인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연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파트1의 모든 인물은 연 감독이 직접 연기한 촬영분을 바탕으로 했고, 파트2도 여자주인공 말고는 모두 연 감독의 실사촬영분으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단다. 문제의 ‘베드신’의 남자-여자도 모두 연 감독 혼자서 실사촬영 한 것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란다. 그리고, 왜 지옥사신이 쫄쫄이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설명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넷플릭스 버전업은 정말 판타스틱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도 흥미롭지만 연상호 오리지널 [지옥 두 개의 삶]은 훨씬 흥미롭다.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12월 18일까지 이 작품을 무료로 만나볼 수 있다. 넷플릭스 지옥 본 사람이라면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