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지막에 등장하는 시위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다 유종선 피디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물어보니, KBS입사초기 이야기를 한다.
“2008년 8월 8일. 심적 충격이 컸다. 저도 온몸에 멍이 들고 옷이 찢어지고 그랬다. KBS 프로듀서로 입사하면 한국사회에서 안전한 자리에 안착했다는 안도와 자부심이 있을 것 아닌가. 회사 안, 제작 현장에서 겪은 사건은 당시로선 너무나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2008년 8월 8일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신 분은 인터넷 조금만 찾아보면 나온다)
“이번 드라마 준비하면서 ‘87항쟁 20주년’을 기념프로그램들을 찾아봤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드라이하게 접근했다가 보면서 많이 울었다. 언론으로서 할 수 있는 멋진 말들이 나왔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시민사회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셔, 부끄러움에 대해서, 사명감에 대해서. 훌륭하고 통찰력이 있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더라.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그런데 드라마가 정치적으로 느껴지면 감상에 저해가 되기 때문에 균형을 잡으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87항쟁 장면은 초고에는 없었던 장면이란다. “작가가 사실 어리‘시’다. 24살에 쓴 글이다. 그래서 이런 정서가 선명하다. ‘내가 서울로 꼭 올라가서 살고 싶은대로 살아보고 말끼다. 이 답답한 데를 떠나.”라는 깡촌의 순덕의 정서가 가득 찬 대본이었다. 대신 시대고증이나 금서에 대해서는 조금 비워놓거나 슬쩍 넘어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처음엔 년도나 시대도 확실하지 않았다.“
유 피디는 고민이었다. 시대를 확정해야 드라마를 찍지. “대통령 사진도 그렇다. 극본에서는 ‘사진이 걸려있다’이지만 찍으려면 누구를? 불분명했다. 찾아보니 1985년으로 하는 게 좋을 듯했다. 금서단속도 다시 불이 붙은 시대였다.”
1985년을 확정한 유종선 피디가 작품에서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태남이(이동휘)가 마지막까지 순덕(정소민)에게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 “언젠가 니가 어른이 되고 세상이 지금보다 좋아졌을 때 글은 그때 써도 늦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 편지에서까지 거듭 당부한다. “그때 세상을 바꿔라. 글은 나중에 쓰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그런데 마지막까지 당부를 받은 순덕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일은 세상을 바꾸는 일, 87항쟁의 복판에 서는 일이었다. 세상이 안전해지기 전에 말이다.
유 피디는 역사이야기를 한다. “저는 한국현대사에서 좋았던 지점이 있다. 대중들이 세상을 바꾼 두 번의 변곡점이 419와 6월 항쟁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미완이었다는 게 참 비극이지만. 절반의 승리를 거뒀고, 그 현장에 우리 인물을 두어 기념을 하고 싶었다.”고.,
“태남이는 끝까지 순덕에게 나서지 말라고 당부한다. 본인도 나서지 못한다. 87년, 모든 사람이 거리로 뛰쳐나가는데 혼자 뛰쳐나가지 못하고 TV만 보고 있는 게 태남이다. 하지만 순덕이는 태남의 인생을 건 당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나가서 스스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된다.”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았다. “하지만 순덕이가 태남이에게 감사해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감사하다. 자기 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선생님에 대해서. 태남이 당부한 대로 순덕이 살았기에, 혹은 태남이 순덕보다 더 그릇이 큰 인물이기에 순덕에게 선생님인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지금, 마음의 지옥에 빠져있는 태남이에게 가서 순덕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선생님에게. 그 감정선을 위해 87년의 장면이 꼭 필요했다.“
“작가도 이 이야기를 듣고 초고에서 빠진 지점이 갖춰졌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러닝 타임에 걸려 이걸 통으로 빼야 하는가 고민이 컸다. 지병현 팀장이 편성팀과 이야기하며 러닝타임이 확보되어 결국 살릴 수 있었다.” 유종선 피디는 드라마스페셜에서 유독 긴 76분의 러닝타임에 이 이야기를 구겨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제지간의 정, 진정한 선생님이라는 평도 감사하지만, 제가 가장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순덕을 통한 태남의 변화였다. 그러나, 순덕을 구하는 고결한 선택을 하게 되는 태남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태남의 마지막 당부는 제발 나서지 말고, 안전하게, 나중에 해라였다. 태남은 결국 그 정도의 인물이다. 하지만 순덕은 바로 했다. 그리고 후일, 태남의 당부를 따랐는지, 그리고 각자의 생각이 어쨌든지 간에, 그 둘은 서로에게 진한 감사와 공감을 느낀다.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공존한다. 그 감정선을 표현하고 싶었다.”
유 피디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 드라마는 보여주는 것 이상의 것이 숨어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장면(시위 장면)에서는 퀸의 'Under Pressure‘라는 곡이 흘러나온다. 시대의 아픔과 청춘의 열정을 마구 표출시키는 명장면에 명곡이 쓰인 것이다. “드라마를 준비하는 시기의 초반에는 전체 정서의 톤을 고민한다. 그 때 이 노래는 내게 확신과 자신을 심어준 노래였다. ’우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우리에게 사랑을, 사랑을, 사랑을......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춤, 이것이 우리 자신, 억압 아래서.‘ 원래도 좋아하던 노래였지만 ‘빨간 선생님’의 내용과 그대로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해서 꼭 넣고 싶었다. 김 장교와 채 부인, 그리고 순덕의 나무 아래 왈츠는 이 노래 가사를 들으며 상상한 부분이다.”고 말한다. 멋있다.
시인 출신이며 아시안게임 개최를 축하는 리포팅한 아버지는 이 드라마를 보고 어떤 평을 했을까. “놀라셨던 것 같다. 출연료는 안 줘도 된다고 하셨다.”고 전한다.
유 피디와 1987년 4월 13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뉴스 내용도.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어요. 마치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입성할 때 시시각각 변하던 당시 언론내용처럼. 그거 있잖아요.”란다.
참, 작품에 ‘안나 카레이나’ 등장했다고 유종선 피디가 노어노문학과 출신은 아니다. 영문과란다. 부전공을 정치외교학 했단다. 그렇단다. Fin.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