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KBS ‘드라마스페셜’ 2016시즌 첫 작품으로 ‘빨간 선생님’이라는 ‘불온한 작품’이 방송되었다. 1985년, 교실 벽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사진이 붙어있는 시골 여자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장군부인의 위험한 사랑>이라는 ‘불온서적’을 ‘타자기’로 집필하는 한 여고생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태양의 후예’의 프로듀서로 더 잘 알려진 유종선 피디의 세 번째 단막극 연출작이다. 이전 작품은 ‘액자가 된 소녀’와 ‘머리심는 날’이 있다. ‘시대를 불사른’ 이동휘와 정소민의 열연이 돋보인 ‘빨간 선생님’의 연출자를 직접 만나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 5공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놀랍게도 ‘2008년 8월 8일의 KBS’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선, ‘데모꾼’이었는지 확인해 보려고 “대학 생활은 어땠나?”고 물어봤다. “풍물패였고, 연극을 했었다.”란다. 당연히 ‘셰익스피어’연극도 했단다. 뮤지컬 버전의 ‘십이야’를 기억한다. 연기도 했었단다. “대사를 뺀 흰토끼 역!.”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말하군.
우선, 드라마 ‘빨간 선생님’에 대해 기본적인 것을 물어봤다.
“충북지역에서 많이 찍었다. 청주, 괴산, 진천군(칠성면), 파주, 수원. 안양에서도 찍었다. 레코드판이 있는 옛날 느낌이 나는 곳을 찾다가 가까운 안양에서 찍었다.”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학교는 외관은 칠성의 칠성중학교란다. “섭외팀이 찍어온 사진으로 보면 작은 학교였는데 찍고 보니 커 보이더라.”고 말한다. 내부 교실장면 등은 괴산에 있는 폐교를 활용했다. “구룡초등학교였는데. 글 쓰시는 분이 작업공간으로 한다기에 컨택해서 그곳을 꾸며서 촬영했다.”
PC가 널리 보급되면서 타자기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98학번’ 유종선 피디는 타자기 실물을 봤을까. “어렸을 때 아버지 타자기를 쳐 봤다. 너무 오랜만에 쳐 보니 종이 끼우는 것부터 기억이 안나더라” 그런데, 시인이라는 아버지의 정체는 ‘다스베이더’만큼 충격적이었다!
‘빨간책’이 처음 발견되는 헌책방은 어디에서 찍었을까. 섭외부장은 부산(아마도 보수동 헌책방거리)을 추천했다고. “헌책방 장면은 인천과 파주에서 찍었다. 제작비 때문에 먼 곳에 갈수는 없었다. 충청권-파주권에 원을 그려 그 범위 내에서 촬영했다. 그리고.....” 작품을 이야기한다.
“이 드라마의 정서는 갑갑한 내륙지방이다. 여주인공이 ‘답답한 곳을 떠나 서울로 가자’ 라는 정서이다. 그런데 부산에서 찍으면 전경을 찍어야하는데 바다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 바다로 나가자’하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제목이 ‘빨간 선생님’이라서 추억의 ‘빨간책’, 포르노그래피를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5공식 빨갱이’이야기였다. 감독은 어디에 초점을 맞췄을까.
“극본을 쓴 작가의 의도이다. 그 부분이 처음부터 감동적이었다. 방송으로 내보내기 위해 작가랑 많이 다듬었다.”
이동휘가 연기하는 노총각 선생 김태남은 학생들로부터 ‘변태남’으로 불린다. 극중에서는 전형적인 보수적 남선생이다. 총각선생이고 드라마에서 맞선(미팅)을 보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첫 맞선. 영락없는 80년대 다방이다. TV에서 뉴스가 나온다.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이 리포팅이 그렇게 의미있었다니!) 이어 나미의 ‘빙글빙글’ 노래가 흘러나온다. 벽에는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 영화포스터가 붙어있다. “그 시절의 영화 중에서 골라서 준비했다. ‘빙글빙글’ 노래는 지금 지금 들어도 시대를 타지 않는, 독보적인 곡 같다. 흥이 나고 당시의 분위기를 확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드라마 뒷부분에 학원선생이 된 이동휘가 다방에서 또 맞선을 본다. 이번에는 ‘고래사냥’ 포스터가 있고, 김완선 노래가 나온다. “그 노래는 나중에 결정되었다. 대본에는 맞선녀가 좀 사는 여자로 설정했고 분장을 시켰는데 해놓고 보니 옛날 김완선 분위기였다. 찾아보니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이 설정 시기였던 87년 5월에 출시여서 깔게 됐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동휘 선생은 그 김완선 분위기의 맞선녀와 결혼을 했을까? 유 피디 “안 했을 것이다. 데이트는 몇 번 했을 것 같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학창시절 음란소설을 쓰고, 대학가서는 데모나 하는 정소민은 무엇이 되었을까. 유 피디, “작가데뷔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출판사 일을 했을 수도. 사회운동 계속 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교사가 되었을 수도.”
“좋은 교사가 되었겠죠?” 유 피디는 “멋진 교사가 되었을 거에요”라고 대답한다. (계속)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