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인형뽑기]((2017)와 [새벽](2018) 등을 연출한 임정은 감독의 장편데뷔작 <아워 미드나잇>이 11일 개봉한다. 흑백영화이다. 언젠가는 무대 위에서 맘껏 연기를 펼치는 것을 꿈꾸는 지훈(이승훈)은 몇 달 밀린 알바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옥탑방과 (이미 졸업한) 학교연습실을 오가며 연극 ‘갈매기’ 대사를 끊임없이 읊조리며 연습한다. 오래된 연인(한해인)과의 관계도 위태롭다. 그런 그에게 선배(임영우)가 특별한 아르바이트를 하나 소개해 준다. 한강 다리 위를 오가며 혹시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말을 거는 ‘자살방지 순찰 아르바이트’이다. 그렇게 해서 한밤의 서울 한강 다리 위에서 은영(박서은)을 만난다. 둘은 흑백으로 가득한 서울의 밤거리를 같이 걸으며 자신들의 전진 없는 청춘을 이야기한다. 임정은 감독을 만나 <아워 미드나잇>에서 말하고자한 청춘의 고뇌를 직접 물어보았다.
Q.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관객반응은 어땠나.
▶임정은 감독: “단편 <새벽>으로 부천영화제와 인디포럼에 참석하여 GV를 해봤었다. 작년 부산영화제는 코로나로 관객 수가 제한되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흑백 이미지에 대한 질문, 화면비율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의 공간에 대한 질문이 많았던 것 같다.”
Q. 이 영화를 쓰고, 찍게 된 계기가 있는지.
▶임정은 감독: “영화학부를 나와 대학원에 갔는데, 단편을 만들기 위해 계속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에 지쳤다. 심사의 늪에서 벗어나서 무드로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 생각해 둔 이야기를 시나리오에 담았다. 안양에 살고 있는데 학교를 갈 때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지난다. 한강을 보면서, 그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공간에 스토리를 붙인 것이다.”
Q. 한강의 다리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만류하는 이야기이다. 그와 관련하여 조사는 해보았는지.
▶임정은 감독: “영화에서 다루는 내용은 완전히 허구이다. 그런 프로젝트는 없다. 대신 관련기사나 논문 등 자료를 많이 보았다. 구조하시는 분 이야기도 찾아보았다.”
Q. 남자주인공 지훈(이승훈)은 배우 지망생이다. 연출가가 아니라 배우에 대한 애정이 느껴질 정도이다.
▶임정은 감독: “실제 학교에서 연기공부를 하더라도 계속해서 연기를 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제 연령대에 맞는 이야기를 감정을 살려 첫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다. 내가 이 영화를 봐도 연기를 하는 배우를 사랑하는 것 같다. 극의 내용이 배우가 직업인 사람이 나와야 잘 어울린다.”
Q. 야간 장면이 많다. 지하철 신도 나오고.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찍은 것인가.
▶임정은 감독: “마지막 장면은 주말 새벽에 찍은 것이다. 시간상으로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그 시간에만 찍을 수 있었다. 세 번 정도 시도했던 것 같다. 세 번째 샷이 좋았다.”
Q. 서울의 밤풍경을 보여준다. 서울의 어느 곳을 보여주고 싶었는가.
▶임정은 감독: “어느 특정한 곳을 보여주어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다. 두 사람이 어디에서 처음 만나,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염두에 뒀다. 명동은 평소에는 사람들로 많이 붐비는 곳이다. 그런데 코로나 시국이어서 새벽 시간에는 통제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인적이 없었다. 둘만의 여정을 무사히 잘 찍을 수 있었다.” (그 시간에 절에서 목탁소리가 난다) “아, 그 장면은 소리를 따로 입힌 것이다.”
Q. 그림자놀이를 하다가 깜짝 놀랄 ‘코끼리’가 등장한다. 당연히 CG일 것이다.
▶임정은 감독: “맞다. CG로 코끼리를 빈 벽에 등장시켰다. 작은 예산으로 고민을 잠깐 했었다. 탈을 이용할까 고민하다가 알음알음 CG로 구현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코끼리를 넣을 생각이었다. 코끼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면 판타지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기코끼리 덤보도 있고, 서커스단 느낌도 들 것이다. 코끼리가 서울 한복판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 느낌을 줄 것이다.”
Q.흑백영화로 찍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기대한 효과를 거두었는지.
▶임정은 감독: “단편 작업을 같이한 김진형 촬영감독의 아이디어다. 콘티 회의를 하던 중 ‘로이 디캐러바(Roy Decarava) 사진집을 보았다. 그림자 속에 인물을 두거나, 흑인의 피부를 더 진하게 보이도록 질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사진작가이다. 매력적이었다. 낮인지 밤인지 시간대도 모르겠더라. 묘하고 흥미로웠다. 현장에서도 흑백으로 모니터링 했다. 계속 흑백으로 진행되던 영화가 엔딩에서 컬러로 바뀐다. 그렇게 전환될 때 특별한 느낌이 들 것이다. 인물이 매고 있는 스카프, 카디건 색깔이 직관적으로 들어올 것이다. 흑백에서는 평범하지만 컬러로 바뀔 때 본인의 색깔을 드러내는 효과를 노렸다.”
Q. 최근 본 영화 중 마음에 남은 흑백영화가 있다면.
▶임정은 감독: “최근 본 작품 중에는 <콜드 워>(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가 좋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채플린 작품은 <시티라이트>이다. 지훈이 학교연습실에서 대사 연습을 하다가 그 영화를 본다. 채플린과 지훈이 한 화면에 담기면 좋을 것 같았다.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찰리 채플린의 타이트한 클로즈업이 엔딩으로 사용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엔딩을 담으면 힘이 된다. 그렇게 엔딩장면을 꾸며 보았다.”
Q. 영화 [시네마천국]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속 그 병사는 공주를 하염없이 99일을 기다린다. 약속한 100일을 앞두고 자리를 뜬다. 왜 그랬을까. 이 영화와 연결점은 무엇인가?
▶임정은 감독: “나도 어린 마음에 그 영화를 봤을 때 그 병사는 왜 가버리지 생각했었다. 하룻밤만 더 가다리면 만나준다고 그랬는데 말이다. 아마도 이 병사는 100일이 지나도 변하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스스로 떠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올라도 변하는 게 없다. 어찌될지 모르는 운명이다. 영화 속 여자는 권고사직을 당했다. 현실에서는 바뀌는 것이 없다. 그래도 두 사람은 밤을 같이 보냈고, 해가 뜨는 아침을 같이 맞이한다. 하고 싶은 말도 다 한다. 남자는 자기가 준비해온 일인극을 마친다. 그렇게 버텨내는 청춘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사실, 이런 설정의 청춘은 너무 많다. 배우는 가난하고, 무명의 삶을 살고, 옥탑방에서 하루를 맞고,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한다는 것 말이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데이트폭력에 시달리는 여자 이야기. 기본설정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뒤의 감정을 더 흥미롭게 보여주고 싶었다. 은유적으로, 비유적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것을 그림자로 비유했다.”
Q. 김광석 노래 ‘너에게’가 나온다.
▶임정은 감독: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이다. 시적이다. 흥얼거릴 수도 있고 말이다.”
Q. 이승훈 배우와 박서은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한 것인가.
▶임정은 감독: “이원영 감독의 독립영화 <희망의 요소>에 출연한 배우이다. 그 영화 촬영 스태프로 참여했었는데 배우가 너무 좋아서 이번 작품 같이 하자고 했다.”
Q. 이승훈 배우는 계속 같은 대사를 왼다.
▶임정은 감독: “연극 <갈매기> 속 대사이다. 원래는 여자의 대사인데 극중 설정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남자주인공이지만 일인극으로 학교 연습실에서 끊임없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답답해 보일 것이다. 다른 것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연극에만 매진한다. 그것도 닳고 닳은 ‘갈매기’를 연습한다. 그 대사가 제일 어울릴 것 같았다. 모든 일이 지나고 나서 뱉어내는 그 감정이 좋았다.”
이때 나오는 대사는 이렇다. “우리 일에서 필요한 건 명성이나 영광이 아니에요. 버틸 수 있는 인내력이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법을 알고 믿을 지어라.”
Q. 엔딩 크레디트를 보니 김덕중 프로듀서가 단역 몇 개를 겸한다.(자살남/방송국직원)
▶임정은 감독: “독립영화 [에듀케이션]의 감독이다. [아워 미드나잇] 도와달라고 했다. 나 포함해서 7명이 촬영한 영화이다. 다 자기 역할이 있었다.”
Q.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되고 1년 만에 드디어 개봉한다. 데뷔작 개봉을 앞둔 감독의 심정은?
▶임정은 감독: “모든 영화가 소중하겠지만 이건 나의 첫 영화이니까 더 애틋하고 소중하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닿을까 궁금하고 기대된다.”
Q. 관객들이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이면 더 재미있을까요.
▶임정은 감독: “영화의 형식적인 면을 보자면 흑백영화의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익숙하게 보아온 공간에 대한 느낌이다. 항상 붐비는 서울의 공간을 흑백으로 보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로세로 비율은 3:2이다. 사진 현상비율로 스크린에서 작품을 보시면 재밌지 않을까. 밤에, 흑백에, 둘만의 공간을 같이 걷는다는 느낌으로 영화를 봐주시기 바란다. 산책을 함께 한다는 느낌으로.”
Q.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지.
▶임정은 감독: “다음 작품은 상업영화일 것이다.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이승훈, 박서은, 임영우, 한해인 등이 출연하는 임정은 감독의 <아워 미드나잇>은 내일(11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