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를 실제로 살지 않았어도 그걸 직시할 용기만 있다면 삶은 더욱 확장된다. 이환 감독과 용석주 PD는 그러한 시각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양한 세상을 조명해온 영화인들이다. 전작들을 통해 대중들이 주목해야 할 10대들의 '문제(를 담은) 작'품으로 조명 받았던 그들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으나 차기작 '영동시장'을 준비하고 있다. '영동시장'은 재능 넘치는 아시아 감독들의 신작을 전 세계 영화 산업 관계자들에게 소개하며 투자와 공동 제작의 기회를 제공하는 아시아프로젝트 마켓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 '영동시장'은 영동시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20대 남녀의 이질적인 청춘을 다루고 있다. 전작들에서는 10대 사이의 미묘한 심리와 섬세한 균열들을 다뤘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다른 위치에 서서 바라보게 된 두 청춘의 교차된 갈등, 그리고 욕망이 오롯이 담길 예정이다. 겉으로는 멜로드라마의 형태를 띠지만 그 속에 담긴 유스 리얼리즘의 처절함은 '시대가 변해도 세대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이환 감독의 말버릇처럼 마음이 아릴만큼 애잔한 서사를 그려나간다.
Q. 지금 준비 중인 차기작 '영동시장'에 대해 생소하게 느낄 관객들이 많을 것 같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 - 20대 멜로 영화다. 멜로만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20대의 사회적인 문제들을 관통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문제들 속에서 가장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은 강남의 20대 밤 문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20대 초반에 대학교에서 만난 어떤 선후배 사이의 연인이 뜻하지 않게 헤어지게 됐다가 1, 2년 만에 재회를 우연치 않게 하게 됐는데 재회하게 된 공간이 강남의 한 도로변에서 자동차다. 서로 간의 변한 위치를 확인하고 감정은 그대로인데 그런 것들을 마주하고 싶고 맞춰나가고 싶어도 감정적으로 서로에 대한 욕망들이 달라져 있는 사태다. 사회적인 구조적인 문제들이 이야기가 대입이 되면서 사회 드라마도 보여주는 멜로드라마다.
Q.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이 - 영동 시장은 기사가 좀 많이 밀려서 지금은 검색해도 나올지 모르겠는데 '박화영'보다 먼저 썼던 시나리오다. 첫 장편 시나리오였고 30대 여자 이야기였다. 제목은 연상호 감독님이 지어주신 것이고,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인큐베이팅을 해줬다. 김조광수 감독님이 멘토였고 개발을 하다가 예산 문제 때문에 엎어진 것이다. 이제 와서 얼마 전에 단편 영화를 찍어볼까 했는데 영동 시장을 꺼냈었는데 눈에 들어온 것이다.
용- 영동시장은 10년 전, 20년 전만 해도 거긴 화류계와 일반인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직장인들이 자정까지 몰려와서 회포를 풀고 술 한 잔 하는 자리가 있다면 그 이후에 화류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 계층이 나눠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직업군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재밌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소재를 잡았다. 우리 둘 다 40대다. 90년대 말 좋아했던 홍콩 멜로의 감성들이 없어졌지 않나. 젊은 친구들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색채감, 화면 구성을 신경 썼다.
Q. 이야기의 구성을 듣다 보니 '중경산림'이나 '화양연화'를 떠올리게 된다. 특정 관객들 입장에서는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 개인적으로는 관객들이 '소년 시절의 너' 덕분에 그런 향수를 느끼게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한 번 곱씹어서 부화를 시켜볼까 하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색채는 그런 스타일로 촬영되지만 이야기는 한국적이다. 밤 문화를 표현할 때 밤에 일하는 여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을 비롯한 전체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웨이터들을 보이라고 부르는데, 보이들 같은 사람들도 말이다. 강남은 수많은 직업군으로 묶여있는 곳이지 않나. 인터뷰를 직접 해보니 각 지방에서 서울에 와서 직업을 찾으려고 생각했던 지방에서 올라온 20대 청춘들이 제일 먼저 초석을 다루는 데가 강남의 논현동인 영동 시장이었다. 강남에서 물가가 제일 싸기 때문이다. 밤일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생활을 하려고 시작했다가 그렇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Q. 아무래도 특정한 소재이고 평범하게 접할 수 없는 소재를 이번에도 선택했다 보니 조사하는 데도 그렇고 차별화된 노력을 기울였을 것 같다.
이 - 시대가 많이 변해서 새로 인터뷰이들을 구해서 인터뷰를 시작했고 친구분을 통해서 아는 분들을 소개받았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그런 것들을 많이 듣고 그것들을 필두로 다 시나리오를 고쳤다.
용 - '영동시장' 기획했을 때 영동시장 초입에서 부동산을 한 20년째 한 친구가 있었다. 건물주, 상인들, 화류계에 있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알아왔다. 그래서 소개를 받고 동의를 받은 다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물론 인터뷰하기 꺼려지는 지점도 있다. 그래서 이 일을 하는 분들을 안 좋게 그린다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인터뷰를 받아들였다.
이 - 왜곡하지 않고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자극적으로 선정적으로 말고, 그렇다고 잣대를 내리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인터뷰이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진짜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만들어달라고 하더라. 그런 것을 보고 싶다고.
Q. 아직 '영동시장'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어떤 방향으로 완성도를 더욱 채워나가고 싶은지, 혹시나 관객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녹여내고 싶은지 궁금하다.
이 - 나도 몰랐지만 일부분의 마음의 동화, 충동을 느꼈을 때의 순간을, 떠올려봤을 때를 좋겠다. 자기가 할 때는 '그럴 수 있어'가 되는데 '남이 하는 것은 그럴 수 없어'가 될 때가 있다. 자기도 그랬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좋겠다.
용 -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현실적인 것들은 배경일 뿐이고 정서가 전달이 됐으면 좋겠다. 멜로와 공간이 주는 특별함도 전달됐으면 좋겠다. 영동시장 안에서의 여러 가지 공간이 주는 좁은 공간에서부터 확장된 대로변에서의 색채감이 주는 정서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