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준 감독은 2020년 2월 9일, 미국 로스엔젤리스 할리우드 돌비극장 객석에 앉아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팀은 1층 객석 앞쪽에, 이승준 감독은 뒤쪽에 자리 잡았다. 이승준 감독은 26분짜리 다큐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었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한국영화사, 다큐멘터리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이승준 감독의 새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이 오늘(27일) 개봉된다. 2012년 한국에 입국한 북한 평양시민(공민) 김련희 여사의 남쪽 생활기를 다룬 작품이다. 김련희는 자신은 탈북자가 아니라 ‘중국에서 브로커’의 꾐에 빠져 한국에 오게 되었다며 줄기차게 자신을 ‘북’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정원과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승준 감독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이승준 감독은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전화가 연결되었다. “인터넷매체에서 저와 김련희가 참석한 가운데 유튜브 방송을 진행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Q. 북한 김련희씨 가족 모습을 어떻게 찍었는지.
▶이승준 감독:“해외 영화제 다니면서 친하게 지냈던 미타 마틸라라는 친구에게 평양 장면을 찍어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금강산도 가봤다면서 흔쾌히 응해주었다. 북한에서의 촬영은 북한당국의 허가가 필요한 사항이다. 김련희씨 가족을 여러 번 취재한 적이 있는 재미교포 언론인이 다리를 놓아주었다. 1년 정도 준비기간이 걸렸다. 2016년 겨울과 2017년 가을 두 차례 촬영이 이뤄졌다.“
Q. 평양 촬영팀에게 어떤 장면을 찍을 것인지 구체적인 요청을 하였나. 조율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이승준 감독: “무엇을 촬영할 것인지 온라인으로 소통했다. 처음 북에 들어가기 전, 베이징에서 만나 필요한 내용을 요청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일상을 많이 담아달라는 것이었다. 출근하는 장면, 밥 먹는 것, 소소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다 찍을 수는 없었다. 북한 당국이 허가한 것은 다 찍었다. 가족들이 밥을 먹는 장면 등은 그렇게 찍은 것이다.”
Q. 영화에서 김련희씨가 평양의 가족들과 통화할 때 보이는 핸드폰에는 ‘신은미’ 이름이 나온다.
▶이승준 감독: “촬영할 때야 연결시켜준 사람이 신은미씨란 것을 알았다. 신은미씨도 김련희 가족을 몇 번 만났었다. 신은미씨가 자신의 휴대폰을 이용해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했고, 가족이랑 소통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신은미씨 휴대폰은 미국 휴대폰이었고, 페이스북 영상통화 기능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Q. 북한에서 찍어온 다큐멘터리를 보면 평양 지하철 장면이 꼭 나온다.
▶이승준 감독: “(평양의 딸이) 버스를 타는 것을 요청했는데, 출근 때 버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을 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 장면이 나온 것이다.”
Q. 영화 정식 개봉 전에 이미 내용이 많이 알려졌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이승준 감독: “DMZ다큐영화제와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되었다.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해외 영화제에 많이 초청받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참석은 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이 소개될 때 많이들 놀라워한다. 자기네들이 알고 있는 탈북자들의 모습과는 다르니까. 대한민국에는 삼성이 있고, BTS가 있는, 시스템적으로 훌륭한 민주국가인데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하기도 한다.”
“DMZ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체제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고 김련희 사정만 이야기해서 불편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기대하거나 알고 있는 것은 이런 모습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김련희 사연을 못 믿겠다, 거짓말이다는 반응이다. 물론 반대의 반응도 있다. 너무 안타깝다며, 왜 돌려보내지 못하냐는 의견이다. 반반씩이다.”
Q. 정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이승준 감독: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영화에도 잠깐 나온다. 재판부 판결을 보면, 김련희씨가 이런저런 상황에서 원치 않은 입국이었다는 것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그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불편한 지점을 그것 때문일지 모른다. 진짜 김련희씨가 간첩이었다면, 왜 처음부터 입국하자마자 돌려보내달라고 그랬단 말인가.”
Q. 김련희씨를 언제까지 취재, 촬영한 것인가.
▶이승준 감독: “2019년 3월까지 카메라에 담고, 6개월간 편집 작업을 했다. 엊그제 오랜만에 완성본을 보니 몇 장면 아쉬웠다. 초반 김련희씨의 입국과정 설명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크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Q. 김련희씨 근황을 소개하자면.
▶이승준 감독: “김련희씨는 지금도 출국금지 안내서를 받고 있다. 원래 한 달에 한번씩 우편으로 오는 것이었는데 너무 잔인한 처사 아니냐고 항의헀더니 6개월에 한 번씩 받는 모양이다. 그리고 김련희씨는 최근 간암 수술을 받았다. 괜찮긴 한데 가족을 못 본지가 11년이 되었다. 빨리 돌려보내는 것이 맞지 않나. 수술소식 접하고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런 내용이 전달되었으면 한다.”
Q.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반응은 무엇인가.
▶이승준 감독:“공식적인 반응이나 의견을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일 것이다. 통일부 대변인이 말하는 것 그 이상의 논리는 없을 것이다. 김련희씨가 이미 사인을 했다는(전향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이, 우리 국민을 북으로 보낼 수 없다는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재판과정에서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 있잖은가. 그럼에도 돌려보내지 못한 현실을 드러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이크로하게 들여다본 이유이다. 어떻게 사는지,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Q. 김련희씨가 노래를 잘 부른다.
▶이승준 감독: “영화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가 노래를 하나 만들면 어떻겠냐고 그랬다. 김련희씨가 노래도 잘하고 해서. 엔딩을 장식하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연출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편집 끝나갈 무렵 그 노래를 집어넣었다.”
Q. 김련희씨가 만약 북의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면, 남과 북이 다 행복할까. 체제 선전에 이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승준 감독: “결국에는 김련희씨의 결정이다. 그런 것들이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돌아갈 것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돌려보낼 경우 저쪽 체제에 이용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을 들었는데, 대한민국이 그 정도로 해를 입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도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통 크게 이용하여야할 것이다. 통 크게 바라볼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Q.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김련희씨 처리에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이 실망스럽지 않은가.
▶이승준 감독: “남북정상회담도 하였으니. 돌려보낼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법적으로 안 된다면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할 듯하다.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다..”
Q. 감독님이 이번 작품에서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이승준 감독: “남과 북 양측의 대응을 최소한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생각한 게 있다. 전쟁 이후 서로 다른 것들에 주목하며 교육받고, 살아왔다. 북은 악이고 우리는 선이라고. 우리는 다르다고 교육받은 것이다. 이제는 우리끼리 비슷한 것이 없는지, 사소한 것이라도 찾아봐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이다. 김치 먹고, 지하철에서 휴대폰 하는 것도 똑같다.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화를 이야기하든, 통일을 이야기하든, 서로 다른 것을 찾을 것이 아니다. 평양에 있는 김련희씨의 가족의 모습을 관객들이 주목해 주었으면 한다.”
Q. 작년 <기억의 부재>로 아카데미 시상식 참석한 이야기 좀 물어보자. 시상식 때 어디에 앉았는가.
▶이승준 감독: “각 부문별 후보들은 1층에 앉는다. 앞쪽엔 극영화 중 많이 알려진 작품의 후보자들이, 우리 같이 다큐멘터리 후보자들은 중간 이후에 앉았다. 우리 팀은 저랑, 프로듀서, 그리고 미국 쪽 파트너인 공동제작자 2명이 앉았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과 제작진 가족은 3층에 앉아서 시상식을 구경했었다.”
Q. 미국 아카데미 회원이신가? 이제 투표권도 행사하는가.
▶이승준 감독: “작년 7월에 심사를 통해 저랑 프로듀서가 아카데미 협회 회원이 되었다. 그래서 올해 ‘미나리’ 후보에 오를 때 투표권을 행사했었다.”
이승준 감독은 아카데미 회원이 된 후 단편 다큐멘터리와 장편 다큐멘터리, 그리고 '작품상(Best Picture)' 부문을 처음부터 보고 shortlist에 오를 작품을 선정하고, 그 다음에 nomination되는 작품을 선정하는 투표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모든 부문에서 노미네이션 작품 선정이 끝나면, 전 부문에 걸쳐 최종 수상작을 선정하는 투표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회원의 역할을 소개했다.
Q. 영화가 개봉된다. 관객에게 한 말씀.
▶이승준 감독: “월요일 진행한 시사회가 잘 되었다. 반응도 괜찮았다. 영화가 개봉되면 의견이 반반일 것 같다. 좋아하시는 분도 있고, 굉장히 불편해 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남북문제를 새롭게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그런 문제 인식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게 정답은 아니고, 정답일 수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시선, 논의의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분들, 국민의 힘, 태영호 의원님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차기작은 정해졌는가.
▶이승준 감독: “기획 들어갔는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민감한 소재라서 말이다....”
이승준 감독은 천생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이성규 감독과 공동연출로 완성한 <보이지 않는 전쟁: 인도 비하르 리포트>(2000)를 시작으로, <신의 아이들>(2008), <달팽이의 별>(2012), <달에 부는 바람>(2014). <크로싱 비욘드>(2018) 등을 찍었다. 아마, 보게 되면 질감이 다른 작품임을 느낄 것이다. 세월호를 다룬 <부재의 기억>, 탈북자가 아니라는 북한출신 김련희씨를 담은 <그림자꽃>의 이승준 감독은 다음 작품도 민감한 소재란다. 한국 사회는 초민감 사회임에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