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벨리의 29살 프로그램 개발자 미래(최성은)가 덜컥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되고 혼란을 겪는다. 남친도, 가족도, (어쩌면) 시댁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단편 [세상의 끝](2007)과 [최악의 친구들](2009)로 주목받은 남궁선 감독의 장편데뷔작이다. 지난 14일 개봉되어 꾸준히 극장에서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 ‘십개월의 미래’의 남궁선 감독에게 영화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Q. [십개월의 미래]는 어떻게 찍게 되었나.
▶남궁선 감독: “2015년 무렵 다른 영화 작업하다가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만들려고 한 작품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런 장르가 세상에 많이 나와서 그냥 미완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 내가 아기를 가지면서 이런 영화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영화감독이다보니 대중문화 속에서 임신을 다루는 방식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기능적으로, 클리쉐하거나, 아니면 한없이 진지한 방식이다. 그것은 (임신) 당사자가 겪는 것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에 충실한 독립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금방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2018년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와 함께 이제 개봉한다.”
Q. 준비하던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면 데뷔작인 단편 [세상의 끝]과 관련이 있나.
▶남궁선 감독: “‘세상의 끝’과 장르는 같은데 주제는 다르다. 인간의 문제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다. 어른들이 말아먹은 세상 속에서 소년과 소녀,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신뢰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신뢰를 찾아간다는 점에서는 이번 영화 ‘십개월의 미래’도 같다.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들이 크게 깨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은 그 신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Q.[십개월의 미래]에는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있나.
▶남궁선 감독: “자전적인 영화는 아니다. 막상 자신의 일이 되기 전까지는 놀라울 정도로 (임신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임신이나 어머니라는 존재를 나와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익숙한 모습의 관념상의 어머니가 개인의 영역에 들어오는 사건이다. 그것을 겪는 사람을 비춰보고 싶었다.”
Q. 미래뿐만 아니라 윤호의 입장에서 보아도 임신을 두고 할 이야기가 있을 것인데.
▶남궁선 감독: “처음엔 주인공 둘만 따라 가면 이야기는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경험은 가정으로 많이 연결이 된다. 영화에서는 그런 보편적인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는 과장되기는 했지만 의외로 윤호나 미래 양쪽 부모님 같은 경우가 많다. 윤호도 괴로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윤호는 그런 과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끝내 다시는 자유롭지 못한 남자의 모습을 보인다. 무능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무책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둘 다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진 친구들이다. 현실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어서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이 많은 젊은이들이 좌절하는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Q.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에 대해서 말해 달라. 1970년대 음악이 나온 것은 뜻밖이다.
▶남궁선 감독: “그 음악들이 고리타분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70년대 나온 음악이지만 여전히 좋다. 이 영화는 거리를 두고 봤으면 좋겠다. 너무 몰입하면 신파가 되니. 즐거운 리듬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음악작업을 했다. 요즘 음악의 경우 질감이 재미가 없는 것 같았다. 가사도 아이러니 하게 쓰고 싶었는데 요즘 음악의 가사를 넣으니 이상해 보였다. 영화자체가 계절감을 넘나들며,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여러 감정이 있다. 가사가 나올 때마다 웃긴다. 그런 아이러니를 살리고 싶었다.”
Q. 영화를 챕터로 구분했다. 이유가 있는지.
▶남궁선 감독: “챕터로 구분한 것은 당사자가 느끼는 시간성을 살리고 싶었다. 당사자들은 빠르게 진행되는 시간 속에서 다양한 문제에 노출된다. 챕터를 끊어주면서 속도감을 높이고, 그들이 느끼게 되는 상황 밖의 구조를 환기할 수 있도록 했다. 터질 것 같을 때 딱 끊어주면서 ‘너 생각은 안됐지만, 다음 상황은...’ 식으로 넘기는 것이다. ‘
Q. 미래를 연기한 최성은 배우도 영상원(연기과) 출신이다.
▶남궁선 감독: “그 때 최성은 배우는 영상원 휴학생이었다. 당시까지 영화작업을 한 게 없었다. 연극 ‘피와 씨앗’을 본 연출부가 한 번 만나보라고 했다. 영화는 감독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최성은 배우를 만나는 순간에 ‘미래가 여기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감정적으로 에너지가 높았다. 내가 생각한 미래에게는 이런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관차처럼 달려갈 것 같았다. 새로운 캐릭터가.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갔다고 생각한다.”
“요즘 성은이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보고는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십개월의 미래’는 최성은 배우의 첫 주연 작이잖은가. 앞으로 좀더 다양한 성은의 모습을 보고 싶다. 최성은 배우는 어디든 갈 갈 준비가 되어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어떤 인물을 맡더라도 그 인물을 끝까지 탐구할 것 같다. 다음 작품들이 나오면 스펙트럼이 더 넓어진 배우가 되어 있을 것 같다.”
Q.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유명한 백현진 배우가 산부인과 의사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남궁선 감독: “백현진 배우는 악역으로 유명하지만 그 전에 이미 유명한 분이시다. 화가이자, 음악가이자, 배우이다. 홍상수 감독, 장률 감독 작품에도 나온다. 그래서 그 분을 산부인과 의사로 캐스팅했다. 뉘앙스가 독특한, 유머가 재미있는 배역이다. 특이한 사람을 캐스팅하고 싶었던 것이다. 백 배우는 남궁선 영화라면 뭐든 하겠다고 말했다. 너무 악역과 미친 역을 많이 하다 보니 대중이 자기를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면 이 영화 꼭 봐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Q. 크레딧을 보니 ‘남궁’ 이름이 많이 나온다. 가족들이 적극 지지하는 모양이다.
▶남궁선 감독: “독립영화이다보니 가족과 친구들이 많이 도와준다. 뒤에서 보조출연도 많이 하시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남궁’ 성이 특이하다보니 좀 많아 보이긴 한다.”
Q. 서울대 건축학과 나와, 건축 관련 일을 안하고, 영화감독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어땠었나.
▶남궁선 감독: “처음에는 한숨을 많이 쉬셨다. 영상원에 몰래 원서를 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아빠와 엄마가 밤새 한숨 쉬는 것을 들었다. 이제는 크레딧에 이름 올릴 만큼, 보조출연도 해주시고, 지지해 주신다.”
Q. 건축학과 출신이다. 건축이 영화와 관련이 있다면.
▶남궁선 감독: “건축학과를 나온 지가 오래되었다. 건축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가교를 놓는 일이라는 점에서 영화와 비슷한 것 같다. 건축학이란 굉장히 현실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질서와 문화를 찾아가는 학문이다. 영화도 사실 그렇다. 굉장히 현실적인 조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업해야한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아지면서, 영상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화는 평소에는 바라보고 싶지 않은 삶의 불완전한 면을 보게 되는 장르이다. 그게 끌렸다. 고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Q. 건축학도로 좋아한 건축가는?
▶남궁선 감독: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를 좋아했다. 아주 옛날 사람이다. 당시 기준으로 보아도 실용적이면 급진적이었다. 재료를 이용하는 방식도 그랬고, 도발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제안을 했던 건축가이단. 그런 패기가 있는 작가에게 끌렸다.”
Q. 그럼 영화감독으로서는 어떤 영화 좋아하나.
▶남궁선 감독: “너무 많다.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감독. 굉장한 내러티브가 비선형적이며 쾌락을 준다. 구스반 산트 감독이 청춘물, 애정극을 좋아했다.”
Q. 미래의 남자, 서영주 배우에 대해서 말해보자.
▶남궁선 감독: “최성은이 미래로 작품에 들어오면서 그에 걸맞은 에너지를 가진 남자친구가 필요했다. 서영주 배우에게는 폭발력이 있다. 둘 잘 어울려서 부딪쳤을 때 케미스트리에서 나오는 조합을 생각했다. 서영주 배우에게 조금 더 깊은 곳까지 데려다 준 것 같다.”
Q. 권아름 배우의 극중 역할은 무엇인가.
▶남궁선 감독: “권아름 배우가 연기하는 강미라는 인물은 미래와는 다른 통속적인 권력욕, 성취욕을 가진 인물이다. 자수성가한 자아도취적 인물이다. 영화에서 미래가 타고 다니는 고물차도 강미 언니가 대학 때 준 걸로 설정되었다. 아, 이런 대사는 편집에서 잘랐지만. 강미는 돈 버는 일에 집중하고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미래에겐 롤모델일 것이다. 아이도 성취로 생각한다. 그런데 저렇게 많이 가지고도 산후우울증을 보인다. 미래가 찾던 롤모델이 되어 주지 못해 더 무서울 것이다. 권아름은 한 사람으로서의 낙폭이 큰 인물을 연기했다.”
Q.영화감독의 꿈은 언제부터 키웠나
▶남궁선 감독: “영화감독의 꿈은 건축과 다닐 때만 해도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영상에 관심을 갖게 되고 영화공부를 하게 되면서 이게 나의 언어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어릴 때부터 놀던 게 그런 것이었다. 역할 정해주고, 대사 시키고 그런 것을 했더라. 꿈이었다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언어를 찾은 것 같다.”
Q. 건축학과에서 영상을 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남궁선 감독: “건축비엔날레에서 영상 작업도 했었다. 컴퓨터로 모델링 하는 일이다. 건축관련 일에서 영상과 관련된 것이 많다. 그런 일, 글을 쓰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업, 전시 작업에도 참여했었다.”
Q. 최하나 감독의 [애비규환](2020)도 덜컥 임신한 ‘여자’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남궁선 감독: ‘[애비규환]을 보지는 못했지만 내용은 알고 있다. 임신과 모성의 문제를 다룰 때 생각보다 그 당사자에게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저도 그랬다. 무지함 속에 혼란스러워하고, 판단을 막 한다. 그런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경험을 하는 여자에게 덜 외롭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남성들도 겪게 되는 괴로움이 있으니 그 점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잘잘못 따지기 보다는 좀 더 따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사람에게는 따듯한 시선을, 사회에는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다.“
Q.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지.
▶남궁선 감독: “검토하고 있다. 영화도 있고, 시리즈도 있다. 요즘 영화 매체가 너무 많이 변해 어떻게 구별해서 말해야할까. OTT다. 예전에 써둔 시놉시스로 만들어진 단편소설집이 곧 나올 것이다. 사계절출판사에서. 다른 감독과 함께 시리즈로 만들 예정이다. 2023년에나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