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착취가 벌어진 성희와 수영의 '삶'과 '몸'. 자본이 숨기려고 했던 노동과 지우려고 했던 존재들. 그들을 품고 있는 ‘사상’. 자본이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배인 사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풍경처럼 펼쳐진다.
2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사상>의 소개말이다. 부산 낙동강변에 있는 사상(행정구역상 사상구(區)이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서울의 구로공단처럼 산업시대 ‘사상공단’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의 지금 모습은 어떨까. 박배일 감독을 만나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박배일 감독은 장애를 갖고 있는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나비와 바다>(2011)를 비롯하여 <강정 인터뷰 프로젝트>,<밀양아리랑>, <소성리> 등 논쟁적 장소의 논쟁적 이슈를 담은 논쟁적 다큐를 잇달아 내놓은 미디어 액티비스트이다. 최근에 부산의 예술전용관의 마지막 나날을 담은 <라스트 씬>을 찍기도 했다. 어쨌든 부산에서 활동하는 인물이다.
Q.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고 있다.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는지. 다큐는 어떻게 찍게 되었는지.
▶박배일 감독: “신방과 출신이지만 공부는 안했다. 어렸을 때는 드라마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영화를 하고 싶어졌다. 영화동아리에서 같이 공부하면서 단편 습작도 만들어보고 그랬다. 어렸을 때는 영화 자주 보는 사람도 아니었고, 카메라를 만져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 가서는 카메라 갖고 노는 게 좋았다. 시네필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좋았다. 우연찮게 다큐를 만들면서 내가 있는 세상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만들었던 습작 영화는 세상을 잘 모르고 만든 영화였다. 영화를 만들면서 알아가 보자고 생각했다. 2007년부터 다큐멘터리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Q.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의 숙명이기도 하겠지만, 힘든 작업을 이어간다. 어떻게 계속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었나.
▶박배일 감독: "영화를 찍는 것은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그런데 계속 활동을 하면서 영화를 찍으면 되더라. 가난하게 살아도 다음 영화를 만들 수는 있더라. 여기 저기 지원을 받거나 활동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 식으로 계속한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경우, 많은 경우는 알바를 해가며, 혹은 투자를 받아 영화를 만드는데 난 계속 영화를 준비하면서 , 조금 확보가 되면 또 찍는다. 그런 커리어가 쌓였다. 현장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 영화는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는다.“
박배일 감독은 자신의 작품 중 흥행(?)면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은 ‘밀양아리랑’이라고 밝혔다. “성공한 게 없다. 그나마 [밀양아리랑]이 많이 알려졌다. 스코어는 3천 명 정도? 여태 내가 찍은 것 다 합쳐도 상영관 관객 수는 만 명도 안 된다.“고 말한다.
Q. [사상]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
▶박배일 감독:"꽤 오래되었다. 2011년에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AND펀드 작품으로 시작되었다.“ (기획서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나?) ”그때 내가 어필한 것은 지금 완성된 것과 똑같다. 부산 사상이라는 공간이 지역사회를 일으키는 시기가 있었다. 그런 시간이 다 지나간 뒤, 남겨진 공간과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자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말이다. 구구절절하게 썼는데 내용은 많이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틀은 유지되었다고 생각한다.“
Q. 원래 태어난 곳이 사상인가?
▶박배일 감독: “아니다. 태어난 곳은 영도이다. 한 살 때 사상으로 이사 와서 30년 이상 이곳에서 살았다. 저의 기억의 30년 이상의 삶이 (부산 사상의) 모라동에 있는 아버지와 살던 집이 중심이었다. 지금은 명지에 산다.”
Q. 처음 ‘사상’이라 할 때는 박정희 산업개발시절의 사상공단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작품은 공단보다는 재개발이야기이다.
▶박배일 감독: “부산 사상은 창원과는 달리 공장이랑 주택이랑 뒤섞여 있다. 큰 공장과 작은 공장이 마구. 그런 곳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것이다.”
Q. 사상의 전경을 비추는 부감 샷은 흥미로웠다. 드론으로 촬영한 모양인데, 그 장면이 특별해 보인다.
▶박배일 감독: “전문가가 스펙터클하게 찍은 것은 아니다. 두 장면에서 사용되었는데 나름 인상적으로 보이고 싶었다. 드론샷 전과 후는 확연히 구분된다. 두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쌓여가다가 뒤에 제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샷은 이제까지 봐온 것과는 달리 봐야할 시점이란 것이다. 샷이 좋은지 나쁜지는 사실 잘모르겠다.”
Q. 민초와 함께 싸우는 다큐멘터리를 많이 찍었다. 어쩌면 카메라에 거부감이 있거나 생경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이 힘들었을 것 같다. 촬영의 비법이 있는가.
▶박배일 감독: “특별한 요령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카메라로 많이 찍는 편이 아니다. 그들이 투쟁할 때 옆에 오래 같이 있는 편이다. 다른 감독님에 비해 촬영은 적게 하는 편이다. 필요한 것만 찍는 방식이다. 어제도 밀양에서 할머니들 감 따는 것 도와줬다. 감 따는 장면 찍으러 내려갔다가 같이 감 따고, 짐 날라주고 그랬다. 카메라는 나중 문제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촬영원칙이라면 원칙이다. 그분들도 내가 영화 만드는 사람이라고 안 느낄 것이다.”
Q. 다시 질문, 그런데 왜 이런 작품만 줄기차게 찍는가.
▶박배일 감독:"처음에는 밀양 송전탑 투쟁을, 그리고 성주 소성리의 사드반대 투쟁 현장에서 그분들을 찍으면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잘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꾸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이라도 하자는 생각이 컸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같이 살 수 있는 방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내가 영화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그런 느낌을 관객과 나누고 싶다.“
Q. 박성희씨와 최수영씨,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박배일 감독: “‘사상’을 촬영한 시간은 9년에 이른다. 작품의 주인공인 ‘사상’을 담고 싶었다. 아버지(박성희 씨)가 사상의 공장에서 30년 이상 일했다. 노동 현장에서는 멀어졌지만 그 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사상의 이야기가 확장된다. 무너뜨리고 세우면서, 재개발하고 공간을 확장하는 이야기이다. 사상 근처, 만덕에서 투쟁하는 분, 연대하는 분이 등장한다. 최수영씨이다.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다. 그 이야기가 ‘사상’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공간에 맞는 인물이었다.“
Q. 영화를 보며 깜짝 놀란 장면은 아마 장제원 의원의 등장 신 같다.
▶박배일 감독:"하하. 사상에는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전통달집태우기 행사를 한다. 큰 주민축제다보니 정치인들이 와서 연설을 한다. 사상의 문화제를 보여줘야 하는데 장 의원이 그곳에 와서 연설을 하는 것이다. 여기저기 서민들이 고통받고 신음하는데 휘황찬란하게 연설을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 같았다. 무너지는 현장에서 잘 살아보자고. 연설 신은 더 길었는데 잘라버렸다. 그 장면도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이 사회는, 이 작품은 남성들의 언어가 많이 지배한다. 조금은 공허한, 하늘에 떠있는 언어라고나 할까.“
Q. 그런데, 영화에는 두 사람의 주요 캐릭터 말고 외국인 노동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진다. 뭔가 인서트 화면 같기도 하고, 뭔가 하다만 이야기 같기도 하다.
▶박배일 감독: “그 분들은 1년 동안 따라다니고 촬영을 했었다. 그런데 찍다보니 이 영화에 너무 많은 결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어, 저 장면 왜 들어갔지?’라는 질문만 나올 정도로 집어넣었다. 지금 사상을 끌고 가는 힘은 이주노동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분들의 생활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왜 나왔을까’하는 생각으로 찍었다. 찍은 많았지만 많이 들어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처음엔 30분 정도 그 사람들 이야기가 있었다. 번역도 하고 그랬는데. 어쨌든 빼버리고 그만큼만 남았다.”
Q. 조금 전에 밀양에 감 따는 이야기를 했었다. 차기작은 다시 ‘밀양’이야기인가?
▶박배일 감독:“밀양의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일상이다. 여전히 싸우는 모양새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면서 밀양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이야기도 있다. 발전소 인근 사람은 이주해야한다. 밀양의 송전탑도 그 영향권이다. 그래서 전국의 핵발전소 인근 송전탑에 관한 지형도를 담고 싶었다. 결국에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네 그들 시골 주민들만 그런 고통을 겪어야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Q. 아버지의 오랜 모습을 팔로잉하며 찍었다.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나.
▶박배일 감독:"별 신경 안 쓰신다. 부산 사람끼리의 말하는 방식, 관계라는 게 있잖은가. 처음 찍기로 했을 때는 고개를 갸우뚱하시기도 했다. 찍은 걸 보여 드리면서 ‘이런 장면도 있다 뺄까요’ 했더니 ‘니가 알아서 해라’ 그런 반응이셨다. 그래서 알아서 했죠.“
Q. ‘사상’을 9년이나 찍었다면, 그 사이에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원래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다발로 찍는 작업방식인가?
▶박배일 감독: “그건 아니다. ‘사상’만 그랬다. ‘사상’ 시작하면서 끝낼 것 같았는데 ‘밀양’을 2년 정도 쫓아다녔고, 생탁 노동자 현장에 있어야했고, 또 소성리도 있었다. 그 작업들은 집중해서 했다. ‘사상’만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더라. ‘라스트 신’ 마무리하고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2018년 집중해서 ‘사상’을 찍었다.”
Q.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박배일 감독: “‘밀양’은 부산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만들고 있다. [얼굴의 땅]이란 11분짜리 단편을 만들었고 그걸 바탕으로 90분에서 100분 정도의 영화로 확장시키려고 한다. 시작은 단순했다. 밀양에서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일구는 땅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안에 그들의 투쟁이 담겨있다. 그 투쟁을 보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송전탑과 관련된 분들의 얼굴과 그 땅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실 내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잘 살까라는 이야기이다.”
Q. 개봉을 앞두고 예비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배일 감독:“일단 이 영화를 많은 분들이 봐 주시면 좋겠다. 이런 영화는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게 아니니깐. 이 영화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나와 닮았는지 함께 고민하고 봤으면 좋겠다. ‘사상’은 엄청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밖으로 나가면 있는 흔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분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Q. 아버지는 요즘 어떠신가.
▶박배일 감독:"아버지가 손가락도 다치시고,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하셨다. 스스로 회복할 힘이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할래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지금은 다 나으셨다. 지금은 건강하시다.“
Q. 앞으로 계획은? 계속 이런(!) 영화를 만들 것인지.
▶박배일 감독: "물론이다. 계속 만들 것이다. 그것도 독립영화만을 계속 만들 것이다. 자본이나 다른 이야기에 휘둘리며 작품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영화를 만들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지만 저한테는 소중하다.“
모래성을 무너뜨리듯 수십 년간 쌓아온 공동체를 파괴한 자본과, 자본이 할퀴고 간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다큐멘터리 <사상>은 10월 21일 극장에서 개봉하여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