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승자는 한 사람이 아니었다. 수많은 관련자들이 잭팟을 터뜨렸다. 그 중에는 정호연(27)도 있다. 새터민 출신의 새벽을 연기한 정호연은 개성 있는 마스크와 우수에 젖은 분위기로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한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2013년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에 입상하며 모델 활동을 시작한 정호연에게 ‘오징어 게임’은 첫 연기 도전이었다. 정호연을 만나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새벽 역의 정호연입니다 즐겁게 45분 동안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화상인터뷰 zoom을 통해 취재진에게 인사를 던진다.
Q. 새벽은 우리 사회의 약자에 속하는 새터민이다. 배우가 해석한 새벽이의 성격과 연기 포인트가 있다면.
▶정호연: “새벽이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무뚝뚝한 인물이다. 외면적으로는 그렇지만 내면에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희생할 줄 아는 따뜻함이 있다. 그런 여린 면을 게임의 과정을 통해 잘 그려내고 싶었다.”
Q. ‘오징어 게임’에서 새벽이 역할을 누가 맡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황동혁 감독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정호연을 왜 캐스팅했을까.
▶정호연:“감독님이 제 눈빛에 대해 한번 얘기해 주신 적이 있다.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눈빛이 ‘너무 좋아요’라고 하셨다. 야생마 같다고도 하셨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자기가 목표한 바를 이루겠다는 것이 느껴진다고. 이렇게 말하니 부끄럽네요. 감독님은 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다.”
Q. 이유미와의 관계가 아주 특별했다. 한국 팬뿐만 아니라 해외 팬들의 반응도 6부에 큰 반응을 보였다. 작품이 공개되고 나서 이유미씨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지?
▶정호연: “유미와는 작품이 공개되기 전에는 많이 만났지만 작품이 공개된 후에는 서로 바빠서 만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통화는 이틀에 한번 정도 한다. 많은 관심에 감사드리고, 부담되기도 한다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첫 촬영 때부터, 내 연기의 첫 상대가 유미였다. 첫 리딩 끝내놓고, 저녁식사 시간부터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다. 둘 다 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유미는 저보다 연기 경험이 훨씬 많고, 저보다 먼저 겪었던 일들이라. 소중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둘의 관계가 캐릭터에도 많이 녹아난 것 같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상대역으로 유미를 만나 정말 행복했다.”
루이비통과 샤넬 등 최상급 브랜드 쇼 모델로 활동하던 정호연은 막연하게 다음 수순으로 연기를 꿈꿨다고 한다. 미국 체류 중 막 계약을 맺은 소속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오징어 게임’ 대본을 보낼 테니 오디션 영상을 최대한 빨리 찍어 보내달라는 것이었단다.
Q. 오디션 과정을 좀 소개해 준다면.
▶정호연: “뉴욕에서 패션위크를 준비하고 있는데 오디션영상을 빨리 찍어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빨리’라는 게 언제까지인지, 오디션 영상을 어떻게 찍어야하는지 몰라 당황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고 생각했다. 대본을 들고 잠도 못 자고 최선을 다했다. 보낸 영상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는데 감독님이 직접 보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그것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캐스팅될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는데. 누군가 사흘 동안 열심히 에너지를 쏟아 부은 것을 가치 있게 봐주신 분이 있다는 생각에 고마웠다. 그래서 뒤로 안 돌아보고 한국으로 달려왔다.”
Q. 오디션 영상은 어떻게 준비했는가.
▶정호연: ”그 때 받았던 신이 몇 개 있다. 동생하고의 신, 새터민과 펼치는 연기장면, 그리고 후반부 신이었다. 정호연은 개인의 이익과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는데 새벽은 기본적으로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동생을 강하게 잡아주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감정을 일기로 남겼다. 강을 건너 국경을 넘어 어렵게 한국에 올 때까지 동생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감정을 기억하면서. 그렇게 넘어와서도 이래저래 사기도 당하고, 동생은 보육원에 맡겨놓고 살아간다. 소매치기로. 그런 순간의 마음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새벽이가 갖고 있는 전사는 감정적으로 굉장한 일들이다. 그렇게 쌓인 상황에서 내뱉은 말들은 묵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기라는 것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첫 연기에 도전하는 부담감은 어땠는지.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있었다면.
▶정호연: “부담감의 연속이었다. 오디션을 보면서도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놀랐고, 하루하루 스케줄이 잡혀가며 현실이 되면서 그 부담이 더 커졌다. 그런데 다들 저를 도와주기 위해 애썼다. 선배, 의상, 분장, 카메라, CG팀. 모두들 저를 도와주려고 한 게 느껴졌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들의 도움을 잘 받아서 한 발 한발 나아가자고 생각했다. 그때 목표는 최선을 다해 시나리오에 있는 새벽이를 정확하게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저는 연기적으로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
Q. 모델 활동을 하다 연기를 하겠다고 한 계기가 있는지.
▶정호연:“해외에서 모델 활동을 시작하면서 제 커리어가 훅 올라갔었다. 샤넬 쇼에도 나가고. 그러다가 내려가는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에 난 앞으로 어떡하지 고민을 시작한 것 같다. 그게 무서웠고 불안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좋은 책, 좋은 영화 보면서 나도 저런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휴가 나올 때마다 연기수업을 들었다. 꿈을 키워보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델 에이전시 계약이 끝나자마자, 소속사를 옮겼다. 그리고 바로 연락이 온 것이다.”
Q. 최근 들어 모델 출신의 연기자들을 많이 만나보게 된다. 모델을 한 것이 연기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는지. 감정연기나 피지컬한 움직임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정호연: “처음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모델들은 화보촬영을 할 때 과장된 움직임을 많이 한다. 의상의 실루엣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연기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움직여야한다. 그런 연기를 펼치기 위해 고민했다. 사람답게 숨을 쉬는 법. 신기하게 촬영하다보니 카메라와의 호흡이 중요하더라. 모델을 하며 배운 것이 조금씩 도움이 될 때가 있었다. 초반에는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말이다. 모델경력이 연기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내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Q.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소매치기 신이었다. 이정재 배우와 부딪치는 장면 촬영은 어땠나.
▶정호연: “그 장면은 정재 선배와 많이 친해지고 나서 찍은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선배가 커피를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빨대까지 꽂아서 건네준다. 그게 선배가 준비한 애드리브인데 현장에서 너무 웃겼다. 다행히 화면에선 잘 안보였는데 사실은 엔지 컷이다. 잘못 했으면 이정재 선배님의 명 애드리브가 못 나왔을 뻔 했다. 내가 웃어버려서.”
Q. 작품에서 대부분 반말을 한다. 대선배와 반말로 대사 나눈 소감은? NG는 없었는지. 모델로 런웨이하는 것과 배우로 연기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떨렸나.
▶정호연: “반말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미국에서 산 경험 때문인 것 같다. 하하. NG는 따로 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웃음이 많아 참는 게 힘들었다. 촬영 전에 선배님과 연기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그날 할 대사를 가지고 여러 방식으로 연습을 했었다. 재밌게 하다 보니 장난삼아 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그게 촬영 들어가면 떠올라 웃음이 나게 된다. 모여 있는 신에서 누군가 웃어버리면 웃음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이다. 모델 일은 아직도 떨린다. 그래도 방법이 쌓여 어떻게 할 것인지 옵션이 많다. 연기는 아직 그런 게 없다. 그래서 연기현장이 더 어려운 것 같다.”
Q. 가벼운 질문을 하나 하자면, 패션쇼를 한 번 하면 수십 벌의 옷을 갈아입는다. 이 영화에서는 거의 츄리닝 한 벌이다. 의상은 몇 벌 준비했나. 기념 삼아 그 츄리닝은 갖고 있는지.
▶정호연: “넷플릭스가 기념으로 준 굿즈가 있다. 촬영할 때는 아마 세 벌 정도를 입은 것 같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촬영할 때 신의 전, 후를 맞추는 작업이 있어 꽤 많이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전의 세트에서 촬영했는데 숙소 옆에 빨래방이 있었다. 거길 지날 때면 의상팀이 빨래한 초록색 츄리닝이 수백 벌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전 한복판에 그런 게 나와 있는 걸 보고 대전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Q. 공개된 뒤 연락이 왔는지. 커피차도 보내주고 응원도 많이 하더라.
▶정호연: “주변 지인들, 동료들로부터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응원 많이 받고 있다. 촬영할 때 소속사와 (블랙핑크) 제니, 류승룡 선배님, 장윤주 선배님, 신현지가 촬영현장에 커피차를 보내주기도 했다. 너무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제니는 공개 전에도 SNS를 통해 홍보도 해주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너무 고마웠다. 이런 천사가 있을까 싶었다. 제가 잘 해야죠.”
Q. 가장 공들인 장면이 있다면.
▶정호연: “새벽이가 제일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은 화장실에서 자기 몸에 박힌 유리조각을 뽑는 신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남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압박감. 자기의 고통이 온전하게 나오는 신이다. 그 장면 찍기 전부터 부담이 되었다. 전날부터 밥도 못 먹고. 현장에서 (김)주령선배(한미인 역)가 옆에 계속 있어주었다. 그 장면 찍기 시작하면서 주룩주룩 눈물이 나더라. 꽤 오래 촬영이 진행되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은 것 같다. 새벽이의 제일 약해진 모습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Q,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국밥집이 소개되었는데.
▶정호연: "원래는 동네 분들만 아는 맛집 정도였다. 요즘은 줄을 서야 한다고 하더라. 너무 잘된 일이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버지도 처음엔 많이 당황하셨다고 하더라. 최대한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우리 가족 모두 열심히 노력해야할 것이다.“
Q. 연기자로서 이제 시작인데 넷플릭스 덕분에 글로벌한 유명세를 갖게 되었다. 오래전 [와호장룡] 때의 장쯔이 같은 느낌도 든다. 해외 진출에 대한 기대감은 있는지. 그러기 위해 어떤 걸 준비해야하는지.
▶정호연: “너무나 영광입니다. 사실 ‘오징어게임’ 끝나고. 연기적으로 더 나아지려고 트레이닝 받고 있다. 영어로 연기하는 것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하고 싶다. 어떤 작품으로 인사를 드리더라도 한 발 더 발전하도록 하겠다. 오래오래 볼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정호연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오징어 게임’이 공개되기 전 40만 명 수준이었는데 얼마 전 1000만 팔로워를 돌파하며 글로벌한 인기를 실감케 했다. 기사 올리며 확인해 보니 그새 더 늘어 1274만 명이다. 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