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개봉된 변요한-김무열 주연의 영화 <보이스>가 2주째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다. <보이스>를 감독한 김곡, 김선 감독은 일란성 쌍둥이이다. 이들은 호기롭게 ‘비타협영화집단 - 곡사’라는 영화공동체를 만든 뒤 2000년 애니메이션 ‘이 사람을 보라’로 데뷔했다. 그 후 이들이 함께, 혹은 따로 만든 작품들은 이렇다. ‘이 사람을 보라’, ‘반변증법’, ‘시간의식’, ‘자본당선언: 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 ‘정당정치의 원리’, ‘프롤레타리아트의 기원’, ‘뇌절개술’, ‘정당정치의 역습’, ‘철의 여인’, ‘고갈’, ‘자가당착’ ‘방독피’ 등이다. 제목만으로는 당최 짐작이 안 가는 작품들이다. 여하튼 이들은 한국독립영화계에 있으면서 심의와 가멸찬 투쟁을 이어왔다. 그런 쌍둥이가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와 ‘무서운 이야기’ 등 상업영화를 만들더니, 이번 추석에 스매싱 히트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영화만큼이나 감독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다. 3분 먼저 세상의 빛을 본 ‘형’ 김곡은 개인적인 일로 인터뷰에 참가하지 않았고, ‘동생’ 김선이 영화 ‘보이스’와 ‘쌍둥이 영화감독’에 대해 털어놓았다.
Q. 김곡, 김선 감독님은 영화를 찍을 때 어떤 식으로 연출 파트를 나누는지. 같이 작업할 때와 따로 작업할 때의 장단점이 있다면.
▶김선 감독: “쌍둥이다보니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너무 자연스럽게 한 몸처럼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생을 연출하듯이 작품을 연출한다. 같이 작업할 때도 있고 따로 할 때도 있다. 많이 이야기 나누고, 생각을 공유한다. 현장에서 역할분담도 그런 식이다. [보이스]의 경우에는 나는 배우와 많이 소통했고, 김곡은 촬영과 미술 파트와 많이 소통했다. 크게 보면 그렇다는 것이지 언제나 역할이 섞여있다. 스태프들도 다 알고 있다. 두 놈이지만 한 놈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그래서 현장이 잘 돌아가는 것 같다.”
Q. '보이스'는 금융소비자에게 큰 경각심을 준다.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주력한 부분은.
▶김선 감독: “‘보이스피싱’을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 그 범죄의 전모를, 해부도를, 내부지옥도를 잘 보여주고 싶었다. 철저한 해부를 통해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범죄의 전모를 보면 ‘나도 당할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장르영화로서의 쾌감을 동시에 전해주고 싶었다. 서준(변요한)을 따라 범죄조직에 들어가고, 우여곡절 끝에 그들을 일망타진시키는 스릴감, 통쾌감을 주고 싶었다. 그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이 감독의 임무이다.”
Q. 보이스피싱 조직을 상상하고, 구현해 내는 과정에서 '이것만큼은 확실히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면.
▶김선 감독: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많은 관계자들을 만났다. 금융감독원, 사이버수사팀, 화이트해커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가 현대의 첨단기기들과 함께 진화하는 범죄이다. 점조직이라서 우두머리를 잡기도 어렵다. 콜 센터는 중국에 있고, 번작소나 환치기가 이뤄지는 곳이 복잡하게 퍼져있다. 영화를 통해 이런 모습을 최대한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다. 물론, 그런 과정을 모두 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 보여드리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중국의 콜센터 내부는 아직 알려진 게 별로 없는 미지의 공간이다. 그걸 영화적 상상력으로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Q. 작품에서 변요한은 경찰출신이라 액션이 가능하겠지만, 펀드매니저 출신의 김무열이 펼치는 후반부 액션신은 과하다는 느낌도 든다. 김무열의 액션 레벨에 대한 연출가의 생각은.
▶김선 감독: “김무열 배우의 액션은 변요한 배우가 펼치는 액션에 대한 리액션에 초점을 맞췄다. 내가 원한 것은 우리 옆집에서도, 내 자신에게도 일어날 것 같은 리얼함이었다. 영화가 허황되게 보이면 안 된다. 그들이 만화 같은 쿵푸를 펼치면 안 된다. 개싸움 같은 맨주먹 싸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들에게 설명해 주었고, 배우들도 흔쾌히 그에 응했다. 변요한 배우가 서준 캐릭터에 몰입해서 맨주먹 싸움에서도 절박하게, 강렬하게 주먹을 날렸고, 김무열 배우도 액티브하게 반응하였다. 현장에서 무술감독이 서준의 액션에 따라 합을 만들어갔다. 액션이 확장된 것이다. 어쩌면 펀드매니저에 걸맞지는 않지만 서준의 분노를 받아주는 액션으로선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통쾌함을 전달하기 위해 배우들의 액션이 헌신적이었다고 생각한다.”
Q. 독립영화계에 오래 있다가 상업영화에 뛰어들었다. 소감이 있다면.
▶김선 감독: “이분법적으로 말하면 안 될 것이다. 자본의 차이가 있지만 정신적으로 일관성을 가지려고 한다. 상업영화를 만들면서도 사회적인 악에 대해 관한 관심을 갖고, 해부하고, 표명하려고 했다. 인문학을 전공해서인지 그렇게 저의 커리어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김곡 감독은 철학을, 김선 감독은 영문학을 전공했다)
Q. 자료를 찾아보니 ‘곡사필름’을 소개하면서 '사회에 순응하는 일련의 상업적인 모든 행위/작품을 배격하며, 조금은 지루하기도 하고 조금은 공격적이기도 한 일종의 반내러티브, 반흥미, 반유행적인 영화를 만드는 집단'이라고 했다. 그동안 영화를 만드는 자세나, 철학이 있다면.
▶김선 감독: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강렬한 구호를 외쳤었다. 사회 전반에 대한 사회적 이슈였던 것 같다. 독립영화를 할 때는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을 갖고, 사회악에 대항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상업영화에 넘어온 뒤에도 그런 생각은 더하면 더했지 없어지지 않았다. 독립영화할 때의 날 것의 방식이 아니라, 좀 더 많은 분들이 접근할 수 있는 편안한 포맷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정신은 일관되었다고 생각한다.”
Q. 영화를 코로나 상황에서 찍은 것인지? 중국 장면은 어떻게 찍은 것인가.
▶김선 감독: “사실은 영화 크랭크인은 중국에서 찍을 계획이었다. 비행기 예약을 다 해뒀는데, 정말이지, 출발 하루인가 이틀 전에 중국 우한 발(發) 코로나가 터졌다. 중국 쪽 촬영은 일단 취소하고 한국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이렇게 사태가 길어질 줄 몰랐다. 본 촬영 끝나고 여전히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중국스태프를 고용해서 중국 장면을 촬영하고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 도시는 선양(심양)이다.”
Q.차기작은 어떤가. 역시 사회물인가?
▶김선 감독: “차기작도 사회물이다. 난 할리우드 키드이다. 존 카펜터나 브라이언 드 파머 감독 같은 고전주의 작가감독에서 로버트 저매키스,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장르영화에 경도된 인물이다. 사회물이면서 장르영화를 같이 하려고 한다. 차기작도 그렇다.”
Q.이번 영화에서 '사회악/장르물'의 두 마리 토끼를 좇았는데 점수를 준다면?
▶김선 감독: “제 생각은 둘 다 100점.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그 밸런스에 만족한다.
Q.변요한을 캐스팅한 이유는
▶김선 감독: “변요한 배우를 행보를 지켜봤다. 그는 큰 작품이든 작은 작품이든 자신이 끌리면 하더라. 시나리오 보낼 때 변요한이 서준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이전에 보여주지 않은 변요한의 얼굴을 보여주었으면 했다. 터프함과 함께 절망, 우울, 끈기, 인내의 얼굴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정말 잘 보여주었다. 그래서 관객들이 호평했다.”
Q. 옛날 김곡-김선 감독의 독립영화 시절 작품을 보면 일반적인 ‘할리우드 키드’는 아니었을 것 같다. 형제는 영화판에 들어오기 전에 영화를 어떻게 접근, 소비하셨는지.
▶김선 감독: “초등학교부터 비디오가게에 살다시피 드나들며 마구잡이로 할리우드 영화를 봤었다. 특히 공포영화를 좋아했다. 웨스 크레이븐이나 존 카펜터, 다리오 아르젠토 등 마구마구 섭취한 것 같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었는데 둘이서 만든 영화가 영화제에 소개되면서 영화판에 흘러들어왔다. 원래는 영화감독이 꿈이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 같다.”
Q. 감독의 인생작은?
▶김선 감독: “자신의 인생작이 바로 떠오르는 감독, 영화인이 있나요? 영화를 하겠다면서 어느 하나를 보고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십 편, 수백 편 보면서, 인생자체가 영화가 된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티’인 것도 같다. 엄마가 ‘이티’를 처음 보여줬다고 하더라. 그렇게 까불던 애가 그 영화를 입 벌리고 보더라는 것이다. 난 기억이 없다.”
Q.최근 콘텐츠 시장의 무게중심이 극장에서 OTT로 넘어간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 입장에서 이런 변화에 대한 생각은.
▶김선 감독: “시장은 변할 수 있겠지만 정신은 변하지 않는다. 어느 감독이 말했듯이 영화는 계속될 것이다. 다중이 동시에 보는 영화라는 형태는 불변할 것 같다. 집에서 혼자 소비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시장 구도가 변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신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가 잦아들면 다시 극장으로 올 것이다.”
Q.공포물, 사회물에 관심이 있다고 하시니까. 조던 필 감독 좋아할 것 같다. 만약 헐리우드에 진출한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김선 감독: “조던 필 매우 좋아한다. [보이스] 끝나자마자 할리우드에서 콜이 왔었다. 시나리오까지 썼었는데 결국 그 프로세스가 중단되었다. 영화는 감독 따라 가는 것이니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더라도 저희가 반영된 영화가 나올 것이다.”
Q. 혹시 ‘오징어 게임’ 보셨는지?
▶김선 감독: “아직 못 봤다. 한국영화가 급변하고 있다. 게임 형식의 영화는 일본이나 미국같이 공포영화가 활성화된 곳에서 많이 나온다. ‘쏘우’나 ‘배틀 로얄’같은 작품. 오타쿠 문화 기반에서 나오는 장르인데 이런 게 한국에서 거대 OTT를 통해 만들어져서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영화판의 적응력, 속도감이 어마무시하다는 것이다.”
Q. 최근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
▶김선 감독: “디지털매체와 관련된 범죄. N번방이나 디지털폭력, 몰카 장사, 데이터폭력, 디지털화된 폭력 등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 (아마도 차기 작품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Q. 김무열이 연기하는 인물의 악마성에 대해.
▶김선 감독: “보통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았을 때 죄책감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악마는 일말의 가책도 못 느낀다. 보이스피싱은 비대면 범죄다보니 더 무자비하고 더 비인간적이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곽 프로(김무열)이다. 콜센터는 악마들의 놀이터이고, 악마들의 대장이 현장을 휘젓는다. 김무열 배우는 그 많은 대사들을 찰지게 잘 소화해주었다. 대사가 정말 많았는데 대사의 흐름을 유려하게 이끌었다. 슬로우 템포로, 개구지게, 강렬하게, 호소력 있게, 까불거리기도 하고. 그 리듬감을 정해놓았는데 김 배우는 그것을 완전히 체화시켜서 다 외고 리드미컬하게 소화했다.”
Q. 이주영 배우는 어땠나.
▶김선 감독: “이주영 배우가 연기한 깡칠이는 조력자 역할이다. 짧은 시간 서준과 교류한다. 총명함과 말괄량이, 인정머리, 의리도 있어야하는 걱정스러운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주영 배우가 한 방에 해결했다. 대사를 읊는 순간, 의리도 말괄량이도 다 담겨 있었다.”
김선 감독은 “‘보이스’ 큰 과제였다. 사회적 이슈를 영화에 담으면서 장르적 쾌감도 안겨주고 싶었다. 관객분들이 좋아해 주셨으면 한다. 감사합니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지난 15일 개봉한 [보이스]는 어제까지 2주일째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며 어제(28일)까지 98만 6,447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