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박정민이 출연하는 영화를 보게 될 때는 그가 어떤 변신을 하는지 지켜보게 된다. 2011년 독립영화 [파수꾼]이래 그는 주연이 아니어도 눈길이 가는 특별한 연기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다. [동주]에서의 송몽규가 그랬고,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의 피아노 소년이 그랬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의 역할이 그랬다. 이번 추석 시즌에 개봉하는 영화 [기적]에서는 정말 기적을 보여준다. 고등학생 역할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던 1980년 시골 청년의 모습이 먹먹하게 그려진다. 15일 개봉을 앞두고 박정민을 만나 영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뉴노멀이 되어버린 ZOOM동영상 인터뷰이다.
Q. 시사회에서 완성본을 본 소감은 어떤지.
▶박정민: “시나리오를 받고 단숨에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영화에 잘 묻어났다. 책(극본)에 울림이 있었는데 영화에서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감독님께 고맙다고 연락을 드렸다. 다른 배우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Q. 준경 캐릭터를 위해 따로 준비한 것이 있다면.
▶박정민: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사투리 준비를 많이 했다. 사투리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연기를 못하면 안 되니까. 나부터 즐겁게 해야 다른 분들도 즐겁게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연기적인 부분은 이미 시나리오에 나와 있었다.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의 크기로 감정을 잡아야할지 계산이 필요했다. 나머지는 현장에서 즐겁게 촬영하는 것만 생각했다.”
Q. 찍기는 했는데 편집에서 빠진 장면이 있는지.
▶박정민: “편집에서 잘린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도 ‘아 편집되었네’ 그런 생각이 안드는 것을 보니. 그렇지 않다면 감독님이 보시고 중요하지 않았으니 뺐을 것이다.”
Q. 사투리 연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기를 펼쳤다.
▶박정민: “사투리는 [동주]할 때 북간도 사투리와 일본어를 했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는 태국어도 하고. 하게 되더라.”
Q. 피아노천재에 트랜스젠더까지 연기하더니 이제 17세 고등학생을 연기한다. 고등학생 연기가 부담이 되었다고 밝혔다.
▶박정민: “처음에 이 작품을 거절하려고 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장훈 감독님이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이 감독과 작업을 하면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으로 반했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하기로 한 것이다. 10대 청소년을 연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를 믿고 갔다. 현장에서 즐겁게 촬영하는 게 중요하다.”
Q. 박정민 배우는 최근 들어 워낙 진폭이 큰 연기를 해왔기에 이번 작품은 오히려 소품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의 어떤 부분이 끌렸는지.
▶박정민: “그동안 성격이 강하고 캐릭터성이 강한 작품을 한 것 같다. 감독님은 나에게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잘 어울릴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은 면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촬영 현장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이 작품에 많이 끌린 것 같다. 캐릭터 성격이 강한 것을 연기할 때는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감독님 말 믿고 따라가 보자 그랬던 것 같다.”
Q.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나.
▶박정민: “양원역을 다 지었지만 그 곳에 기차가 서지 않았을 때부터 무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이런 것을 하고 싶었는지, 자기감정이 응어리져 있었던 것도 결국은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일단은 그 부분에서 계속 마음이 아팠다. 꿈을 위해 노력했는데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그런 것을 느꼈을 것이다.”
Q. 이수경 배우가 극중 역할과 관련하여서는 무서울 수도 있다. 현장에서 어떤 이야기 나눴는지.
▶박정민: **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영화 감상을 위해 개봉 1주일 후 공개하겠습니다 **
Q. 이성민 배우와의 투샷이 너무 현실적인 부자의 모습이었다.
▶박정민: “저와 아버지랑은 정말 흔한 부자관계이다. 저도 굉장히 무뚝뚝한 아들이다. 둘 다 무뚝뚝하니 대화가 거의 없다. 그런데 요즘말로 츤데레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잘 표현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 제가 아버지한테 잘하려고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다. 그런 식으로 무뚝뚝한 아버지와 아들이다. 이성민 선배와의 연기호흡은 너무 좋았다. 선배님 연기 보고 많이 놀랐다. 생각도 못한 굵직함이 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Q. 극중 준경의 천재성처럼 박정민에게도 뭔가 남다른 천재성이 있는지. ‘연기’ 말고.
▶박정민: “저에겐 천재성이 없다. 하나쯤 발견해 보고 싶지만 없다. (생각하다가) 어렸을 때 공부를 잘했다. 엄마는 내가 천재인줄 알았다. 아, 보기와는 달리 운동신경이 좋다. 연기에서 천재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Q. [언프레임드 프로젝트]에서 연출도 한다고 들었는데, 계획이나 포부를 조금 밝혀주시면.
▶박정민: “이미 작품은 다 끝낸 상태이다. 영화 시작 전이라면 ‘잘 만들어보자’라고 포부를 밝히겠지만 지금은 다 끝났으니 ‘좋은 경험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작품에는 어린 배우들만 나온다. 조금 다르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재밌게 잘 만든 것 같다. 영화가 공식적으로 공개가 되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감독님들이 자기 영화 공개되고 나면 왜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공감이 가더라. [언프레임드 프로젝트]가 공개되면 저도 다양하게 재밌게 이야기해 해드릴 수 있을 것이다.”
Q. 영화는 1980년대 후반이 배경으로 시골 ‘깡촌’이 배경이다. 그런 배경의 영화에서 어떤 감성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는가. 이와이 슌지 감독 작품 분위기도 났다.
▶박정민: “이장훈 감독의 전작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볼 때 일본 원작이 있는 것이라 큰 기대를 안 했었는데 보면서 의외로 재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영화 보면서 감독님의 세계관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시대적 분위기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분이다. 소품에서 느끼는 감성이 있다. 레트로하다는 것과 촌스럽다는 것은 다르다. 촬영하면서 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 영화 같다는 이야기도 한 것 같다. 시대를 막론하고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다. 보고 듣고 싶어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가끔은 착하고 예쁜 영화가 보고 싶을 것이다. 우리 [기적]은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적어도 나에겐 가끔씩 예쁜 영화, 마음을 울리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Q. 편견일수도 있는데, 감독님 전작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문과출신 인줄 알았는데 컴퓨터공학이었다. 감독님이 촬영장에서 이과적인 면모를 보인 적이 있는지. 신호등 만들 때 뭔가 훈수라도 뒀을 것 같다.
▶박정민: “감독님은 생각보다 마음이 따뜻하다. 서울대 공대 출신이지만 ‘나, 신호등 만들 수 있어요’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당연히 가능할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수학문제를 술술 빨리 풀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마음이 따뜻한데 냉정한 면도 있다. 그게 너무 매력적이다.”
Q. 감독님의 디렉션 중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박정민: “감독님은 배우에게서 좋은 연기를 꺼집어내는 방법을 꽤나 잘 알고 있다. 저나 수경이, 윤아에게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적절하게 디렉션을 주고, 기다릴 줄 아는 그런 모습에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알맞게 연출을 해주시는지. 자신감도 심어주고 말이다. 그런 모습이 정말 놀라왔다.”
“감정을 표출하는 장면에서 감독님의 진가가 발휘된 것 같다. 배우들의 감정이 올라오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으면 그걸 기다린다. 이 배우 장면을 언제 찍을 것인지 애초에 계산을 하고 오신다. 감정 잡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끊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흘러가도록 둔다. 그런 타이밍을 잘 맞춘다. 마지막에 나와 수경이 두 명을 찍는 경우에 그런 것을 많이 느꼈다. 물론 딱 잘라서 ‘이걸로 충분합니다’라고 하기도 한다. 이장훈 감독님, 다음 작품에도 출연시켜 주세요.”
Q. 혹시 인터뷰를 하면서 기대한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면? 자문자답을 하나 하신다면.
▶박정민: “아, 그게... 양원역 역사는 우리가 만들어 가면서 촬영을 했다. 물론,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양원역 역사를 짓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양원역은 그냥 벽돌로 만든 건물인데 뭔가 건물에 자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무생물이라도 자아가 될 수 있다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어느 순간 양원역을 보면 눈물이 나더라. 그 역 앞에서 누나(이수경)랑 싸우는데 마치 세 명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Q. 이장훈 감독님 다음 작품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때도 고등학생 역을 준다면.
▶박정민: “그건 아니죠. 어떤 역할이든 마다하지 않겠지만. [기적]에서 고등학생 연기를 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꼭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역할을 하고 싶다.”
Q.마지막으로 박정민 배우에게 일어난 기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정민: “내가 영화배우가 되어 영화를 만든다는 것도 기적이고, 이렇게 홍보한다며 기자들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이런 건 저랑은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영화 속 준경이처럼 꿈 하나를 바라보고 달려왔다. 그랬더니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다. 이런 게 신기하다. 순간순간 작은 기적들이 쌓이는 것 같다. 앞으로 10년 뒤 제 모습에서는 또 다른 기적이 생길지 모른다. 앞으로도 그렇게 연기할 것이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시골 청년 준경이를 멋들어지게 연기한 ‘34살’ 청년배우 박정민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박정민, 이성민, 임윤아, 이수경 주연의 영화 [기적]은 15일 개봉된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끝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