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가치도 몰라. 서 있는 위치도 몰라. 더 이상 뒤돌아갈 수조차 없다면. 길 잃고 헤매는 당신. 따라와 나의 속삭임."
자신을 향한 혐오만큼이나 마음을 죽이는 일은 없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과 자신이 자신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기혐오'는 무시무시한 단어지만 사람들은 곧잘 이 행위에 빠져든다.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좌절과 상실감을 겪을 때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게 된다. '내가 못나서, 내가 부족해서, 내가 속하지 못해서'라는 의심은 참 쉽게도 인간을 방황하게 만든다.
'헤드윅'은 완벽한 성전환에 실패한 트랜스젠더 로커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 밴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콘서트 형식의 뮤지컬 작품이다. 헤드윅이 헤드윅이 되기까지 살아온 과거의 이야기, 락스타 토미 노시스와의 스캔들, 그리고 현재 그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와 토크를 통해 이어가며 풀어낸다.
동독에서 살고 있던 소년 한셀은 유년 시절 아픔을 가지고 성장했고 이후 미군 병사 루터를 만나게 되며 여자가 되는 조건으로 결혼을 제의받는다. 미국에 가고 싶었던, 자유를 찾고 싶었던 한셀은 엄마의 이름인 헤드윅으로 이름을 바꾸고 성전환 수술을 받지만 실패로 일 인치의 살덩어리가 남게 된다.
헤드윅에게 세상은 잔인한 무대다. 그것도 한 번 서게 되면 다시 되돌릴 수 없고 도망갈 곳조차 없었던 무대. 헤드윅이 털어놓는 그의 유년 시절과 과거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그가 어떠한 삶을 걸어왔는지, 그 투박하고 거칠었던 행로가 그를 어떠한 고통으로 이끌었는지 절절히 드러낸다.
이는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다. 어떠한 선택을 내릴 때 그 결과를 알 수 없고, 이후 시련을 겪었을 때 인생을 되감을 수도 없는 불공평함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실패한 수술로 인해 평생 일 인치의 살덩어리를 안고 가야 했던 때에도, 미국으로 갔지만 남편의 바람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때도, 토미와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순간에도 그에게 인생은 쓰디쓴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헤드윅이 공연하는 노래들은 시련을 마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 번쯤은 자기혐오를 겪어봤을 관객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Tear Me Down'으로 혐오하는 세상을 향해 통쾌한 메시지를 전하고 'Wicked little town'은 자신과 같이 길을 잃은 자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미움과 증오에 지치고 원망과 좌절에 빠져도 음악의 힘을 믿으며 공연을 이어나가는 헤드윅은 말한다. "외로운 세상. 지친 영혼. 지지 말아. 포기 말아. 손을 들어!"
*뮤지컬 '헤드윅'은 7월 30일(금)부터 10월 31일(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헤드윅 역에는 조승우, 오만석, 이규형, 고은성, 렌이, 이츠학 역에는 배우 이영미, 김려원, 제이민, 유리아가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