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와 <황해>라는 선 굵은 영화를 내놓은 나홍진 감독이 세 번째 작품 <곡성>을 내놓았다. <곡성>은 다음 주 열리는 제 69회 칸 국제영화제에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상태이다. 어제(3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는 충무로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영화 <곡성>의 시사회가 열렸다. 예상대로, 아니 그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결과물이 나왔다. 그야말로 ‘나홍진을 뛰어넘은 나홍진의 영화’로 세상에 또 하나의 걸작의 탄생을 알린 것이다.
영화 <곡성>은 성경 구절로 시작된다.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와 곰곰이 영화를 되새겨보면 그제야 그 구절이 어느 정도 맥락이 들어맞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영화는 곡성(전남 곡성)에서 펼쳐진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천둥번개가 치는 풍경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곽도원은 읍내 파출소 경찰이지만 영민하지도, 부패에 찌든 것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할 것 같은 시골동네의 가장 굼뜬 경찰 모습이다. 그런데 이곳에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것도 계속하여. 살인현장은 끔찍하고 피해자 모습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 사건의 흉악성은 야생버섯에 중독되었든, 원시 샤머니즘과 연관되었든,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심상찮은 분위기로 객석을 압도한다. 곽도원의 딸도 미친 증세를 보이면서 곽도원은 긴가민가하던 용의자 -산골움막에 거주하는 정체불명의 일본인-을 닦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상황은 악화되고, 사건은 오리무중이고, 관객은 멘붕에 빠지게 된다.
영화가 끝난 뒤 기자간담회가 이어졌다. 나홍진 감독과 주연배우 곽도원, 천우희, 황정민과 함께 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FIP)의 토마스 제게이어스(Tomas Jegeus) 대표가 자리를 함께 했다. <황해>의 부분투자를 시작으로 <런닝맨>(13), <슬로우 비디오>(14), <나의 절친 악당들>(15)을 거쳐 폭스 사는 나홍진의 이번 작품의 메인 제작에 기꺼이 뛰어든 것이다.
폭스의 토마스 제게이어스 대표는 “영화를 보셨다면 나홍진 감독에게 크리에이티브 컨트롤을 다 준 이유를 알 것이다. 그는 정말 뛰어난 능력을 가진, 한국을 넘어선 세계적인 감독이다. 세 편의 영화가 전부 다른 느낌을 주며, 훌륭하게 잘 만드는 것을 보고 오히려 저희가 협업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생각한다.” 며 나 감독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표했다.
전작과의 다른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홍진 감독은 “전작과는 달리 피해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발생했을 경우에, 그 피해자는 도대체 어떤 연유로 그 피해를 입어야 하는 것일까, 그 원인을 찾고 싶었다. 그걸 시작으로 해서 이 이야기를 떠올리고 구성을 해나가게 됐다.”며 시나리오 구성과정을 소개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의문의 연쇄사건에 맞닥뜨린 경찰 종구 역을 맡은 곽도원은 이번 영화에서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연약한 남성/아버지 연기를 한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내가 아직 미혼이라 아이에 대한 걱정이나 가정을 지키려는 의지 같은 것을 표현할 때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나홍진 감독께 많이 기대서 찍었다.”고 말했다.
단지 ‘사건의 목격자 무명' 역으로 알려졌던 천우희는 길지 않은 출연 장면을 가장 임팩트하게 장식한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실체처럼 보여야 하는데, 그 에너지를 감추고 발산하는 것을 어느 정도 해야 관객을 끝까지 몰입시킬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자신의 캐릭터를 소개했다.
영화 <곡성>은 나홍진 감독의 천재성을 말할 것도 없고,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작품이다. 곽도원, 천우희, 황정민은 물론 최고였다. 그리고 이들 주인공과 함께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과 곽도원의 딸로 출연한 김환희는 영화의 공포감과 미스터리를 극대화시킨다.
나홍진 감독은 아역배우 김환희에 대해 "육체적으로 힘든 연기도 있고,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6개월 정도 체력을 키우고 액션을 할 수 있게 안무 선생님과 훈련을 계속 했었다. 모든 스태프가 감탄하고 놀랐었다. 정말 놀라운 배우인 것 같다"고 칭찬했다.
황정민은 충무로에서 소문난 완벽주의자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나도 집요하게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집요한 감독과 작업을 했으니 얼마나 케미가 좋았겠나. 영화는 그런 식으로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스스로 공부가 많이 되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천우희는 “징글징글하다.”면서 “나홍진 감독님은 타협이 없으시다.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시는데 그게 정말 신났다. 제가 가지고 있던 갈증을 마음껏 풀기도 하고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원래 천우희는 쿠니무라 준과 강렬한 몸싸움을 펼치는 장면을 찍었었다고 한다. 천우희는 이에 대해 “제가 얼마 안 나왔죠?”라며 “쿠니무라 준과는 고생하며 찍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편집에서 빠진 것에 대해 후회나 미련은 없다.”고 말했다. 천우희와 쿠니무라 준이 맞서는 장면은 최종 편집에서 빠졌지만 이 영화의 미스터리, 스토리의 신비로움, 특히 캐릭터에 대한 해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기자간담회에서 나홍진 감독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특히 영화의 전체적인 해석, 캐릭터에 대한 분석이 필요했다. 이에 대해 나 감독은 “엔딩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여러 사람을 만나 궁금한 것을 여쭤봤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차이를 겪고, 심오함을 겪고, 신선함을 겪었다. 결과는 열어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감히 말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며 “영화에 대한 해석은, 어떻게 해석하든지 그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칸에 진출한 소감에 대해 나홍진 감독은 얼굴에 한가득 웃음을 지으며 "저는 그 영화제의 권위를 신뢰한다."며 예상 밖의 멘트를 내놓았다. 이어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올바르게 만들고 있는지 항상 의심한다. 그래서 작품이 끝나고 이렇게 선택을 받게 되면 내가 전혀 틀린 방향으로 가지는 않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큰 힘이 된다. 그런 의미로 굉장히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곡성의 산들을 가득 덮은 안개, 그리고 악령의 숨결처럼 관객을 옥죄일 나홍진 No.3 <곡성>은 이달 12일 개봉될 예정이다. 나홍진 감독 최초의 15세이상 관람가라고 긴장을 풀지 말라. 이 영화는 ‘배드 테이스트’ 버금가는 악동의 연출작이니 말이다. (박재환)
곡성 (哭聲) (2016년 5월 12일 개봉예정/ 15세이상관람가)
감독: 나홍진
출연: 곽도원, 황정민, 쿠니무라 준, 천우희, 김환희
제작: 사이드미러, 폭스 인터내셔널 프러덕션(코리아) 제공: 이십세기폭스 공동제공: 아이반호 픽처스 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홍보: 1st Look
[사진제공 = 영화사/ 퍼스트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