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훈 감독이 돌아왔다.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라는 이상한 필름을 들고, 이상한 방식으로 영화 팬을 찾을 예정이다.
민병훈 감독은 저 멀리 러시아에서 영화를 배웠고, 타지키스탄의 시골마을에서 그곳 사람들을 배우로 내세워 첫 번째 영화 <벌이 날다>(1998)를 찍었다. 그 영화는 굉장히 순수했고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민병훈 감독은 <괜찮아 울지마>, <포도나무를 베어라>, <터치>, <사랑이 이긴다>를 꾸준히 만들었다. 민 감독의 영화는 종교적이리만치 숭고했다. 충무로에 흔치 않은 작가주의적 영화감독이 되어갔다. 그와 함께 그의 영화를 만나기는 갈수록 힘들어졌다. 그의 예술성 가득한, 휴머니즘 넘치는 영화들은 멀티플렉스관의 ‘퐁당상영 배급’으로 감독은 분루를 삼켜야했다. 그는 더 이상 한국에서 영화 만들지 않겠다고 극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영화를 사랑했고, 영화를 만들어왔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이른바 예술가시리즈에 몰입했다.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민병훈 스타일로. 그 최근작이 바로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라는 작품이다. 중국 현대미술가 펑정지에(俸正杰)를 주인공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단, 화가가 도화지를 앞에 두고 붓을 놀리는 것을 기대하지 말라. 민병훈 감독은 도화지 너머, 화가의 심층세계로 예술혼을 불사를 심산이니 말이다.
어제(26일), 저녁 서울 중구 남산 입구에 있는 ‘문학의 집’ 강당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민병훈 감독의 신작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의 시사회가 열렸다. 대작도 아니고, 한류스타가 출연하는 영화도 아니기에 시사회 풍경은 단출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 차례 공개된 영화였다. 1년이나 개봉이 안 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민 감독은 영화상영에 앞서 마치 PT(프레젠테이션)을 하듯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는 새로운 방식을 소개했다. “지금 예술영화나 다양성영화는 벼랑 끝에 서 있다. 관객들이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극장의 배급 시스템 때문에 관객들이 볼 영화가 없는 것이다.”며 “기존의 극장 배급방식을 거부하고, 6개월간의 로드쇼를 펼칠 것이다. 직접 보따리 장사가 되겠다. 관객과 직거래로 소통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선언했다.
“예술영화를 새벽이나 심야시간에 배정하여 영화관객을 내모는 것은 영화감독 입장에서는 미안할 따름”이라며 그 해결책으로 ‘6개월간의 로드쇼’를 생각해낸 것이다. 민 감독은 신청형 극장, 크라우드펀딩 극장대관, 공동체 상영 등과 함께 파일전송 방안까지 내놓았다.
"한 명이든 다섯 명이 제 영화를 보기를 원한다면, 울산이든 제주도든 울릉도든 원하는 분들에게 파일로 전송하는 방식을 생각했다. 6개월만 극장에 찾아다니며 미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큐레이터와 함께 GV도 할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영화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는 한 예술가의 의식의 흐름을 극화한 듯하다. 65분의 영화 상영이 끝난 뒤 민병훈 감독과 출연한 펑정지에, 서장원, 윤주 배우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관람하듯이 보라는 의미에서 갤러리필름이라 명명했다.”고 밝힌 민병훈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든 계기에 대해 “펑정지에 그림의 팬이었고, 미술관에서 처음 보고 나서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긴 시간동안 화가의 생각과 그 내면을 담아내기에 저 자신이 부족하고 어렵기도 했지만, 화가의 그림을 영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만든 이 작품이 현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펑 화가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이 작품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존재할 것이다. 제가 던진 질문에 대해 관객들이 반응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관객들에 부탁했다.
민 감독은 자신의 새 영화의 새로운 배급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이 영화를 한국 영화 시장에 그대로 내놓는 건 자살행위라고 생각한다. 존엄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좀 더 과감하고 제 나름대로 돌직구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개봉하기를 바란다. 극장에 구속당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재 극장배급 시스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도 여전했다. "스크린 독과점 이야기를 하자면 한마디로 미쳤다. 나까지 미칠 수는 없지 않냐. 제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 관객 수로 평가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독창성, 예술성을 알아봐주는, 이러한 작품을 원하는 사람이 한 분이든 열 분이든 있다면 온전하게 소통하고 싶다"고 ‘고독한 예술감독’은 힘주어 말했다.
화가 펑정지에는 “2013년, 민 감독과는 제주도에서 처음 만나 자신의 작품세계를 영화로 만드는데 동의했다.”며 “이 영화가 자신과 관련된 영화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며 영화의 정체를 나름 소개했다. 펑 화가는 “민 감독은 나에 대해서 찍었다기보다는 전체 예술가의 예술적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작품을 통해 대사가 한 마디 없는 윤주는 “새로운 도전을 한 것 같다. 이 작품은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에 출연한 인연으로 이 영화에도 출연한 서장원은 “감독님을 전적으로 믿고, 시나리오로 없이 오롯이 내면의 열정으로 연기를 했다. 영화를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날 시사회장에는 서장원의 아버지인 탤런트 서인석 씨를 비롯하여 많은 지인, 미술관계자들이 참석하였다. 영화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은 일단 5월 12일 개봉될 예정이다.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