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비로 태어나 면천(免賤)된 후 상의원 별좌에 앉은 장영실은 이후 각종 과학 기구들을 만들어내며 종3품 대호군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파격적인 신분 상승에 성공한 장영실. 그러나 1442년 이후 기록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는데, 과연 장영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오늘밤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파헤쳐본다.
세종은 장영실을 면천시킨 후 온갖 일을 시키며 곁에 두었다. 청옥을 채굴하게 하더니, 어느 날은 물시계를 만들게 하고, 또 어느 날은 금속을 합금하게 한다. 또한 비밀리에 진행되던 세종의 천문 관측사업에 참여하여 혼천의, 간의 등도 제작하며 장영실은 조선 최고의 과학자가 된다. KBS 대하드라마 장영실의 주연 배우 송일국이 보내온 영상편지를 통해 장영실의 속마음을 엿본다.
1442년 장영실은 의금부에 끌려가 국문을 당한다. 세종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시험으로 운행하던 중에 부서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 이 일을 담당했던 장영실은 불경죄로 삭탈관직을 당하고 이후 완전히 기록에서 사라진다. 오늘날에도 완벽히 복원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한 물시계인 자격루를 제작한 장본인이 가마 하나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은 의문스럽기만 하다. 또한 실제로 장영실은 가마의 안전성에 대해 경고를 했고, 이를 묵인한 것은 다른 감독관이었던 조순생이었다는데… 그러나 세종은 장영실에게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고 조순생은 처벌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장영실을 아꼈던 세종은 왜 이런 불공평한 처벌을 내린 것일까?
오늘(28일) 밤 10시 3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세종, 장영실을 버리다’ 편에서는 세종과 장영실의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