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周子瑜/주자유)가 최근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쯔위는 이 프로그램에서 카메라를 향해 대만국기(청천백일기)를 흔들었단다. “자, 여기서 문제! 쯔위의 국적은 어디일까요?”
최근 말도 안 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동아시아에서 벌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로 네 시간 날아가야 도착하는 먼 섬나라에서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 16살짜리 소녀가 어느새 ‘테러리스트’라도 된 것처럼 소동의 한복판에 내져진 것이다. 이런 사태를 알기 위해선 대만(타이완)의 현대사를 이해해야한다.
1911년, 수천 년을 이어오던 왕조가 끝장난다. 그 빈 공간을 모택동의 공산당과 장개석의 국민당이 건곤일척의 패권다툼을 펼쳤고, 그 결과 1949년 10월1일, 중원은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의 차지가 된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대만으로 쫓겨났다. 우리나라는 ‘반공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대만(중화민국/자유중국)과 오랜 국교관계를 유지해 오다, 1993년에 와서야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맺을 때는 “중국은 단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겉으로는 험한 말이 오가더라도 장개석 사후에는 훈풍이 불었고, 경제교류는 물론, 많은 대만연예인들이 중국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정치따로, 예능따로’의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는 듯 했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 정치문제, 민족문제 등이다. 당장 내일(16일) 대만에선 총통(대통령) - 입법원(국회의원) 동시선거가 펼쳐진다. 선거철만 되면 대만도 한국처럼 정치적 신념에 따로 나라가 양단된다. 여기에 ‘황안’(黃安)이라는 연예인이 등장한 것이다.
황안의 데스노트
황안, "대만독립을 반대하지, 대만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황안은 대만 신쭈(新竹) 출신의 가수이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뽕짝(트로트)가수이다. “신 원앙호접몽‘이란 노래로 대만은 물론 동남아일대를 휩쓴 인기스타이다. 그도 언젠가부터 중국에서 활동을 했고, 또 언젠가부터 친(親)중국 연예인이 되어 ’대만독립을 옹호하거나, 주장하는 홍콩과 대만 연예인‘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한국 사람이 알만한 사람으로는 황추생, 하운시, 황요명, 왕대륙 등이 있다. 황안은 자신의 웨이보를 기반삼아 ”이들이 대만독립분자(台獨分子)다.“고 언론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그 레이더에 쯔위가 덜컥 걸려든 것이다. 바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대만국기 ’청천백일기‘를 신나게 흔든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황안의 행동에 대해 대만의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일부 방송사에서는 그를 프로그램에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대만네티즌들은 그의 대만국적을 박탈시켜야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웨이보를 통해 “대만은 국가가 아니다. 대만국적이란 말은 없다. 그러니 나의 대만 호적을 취소한다는 건 말 잔체가안 된다.”고 말했다.
황안은 지난 해 자기의 웨이보를 통해 명확히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를 밝힌 적이 있다. “나는 대만독립을 반대할 뿐이지 대만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은 나의 집이다. 나는 영원히 중국인으로 살 것이다. 죽을 때도 중국인으로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JYP, "그건 오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JYP측은 이틀연속 성명을 발표하며 사태진화에 나섰다.
중국의 SNS인 웨이보를 통해 13일(수) 내놓은 첫 공개성명서에서는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본사 연예인 관련 부실소문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 우리 회사는 문화기업으로서 시종 중한양국의 우호와 문화교류 촉진에 노력해왔다. 우리 회사(쯔위 포함)는 중국정치와 관련된 어떠한 발언이나 행동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전언 때문에 우리 회사는 중국대륙에서 일상적인 업무에 영향을 받고 있다. 줄곧 유지해오던 파트너와도 우호적인 관계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회사는 해당 연예인이 준비 중이던 중국내 연예활동을 전부 취소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파문이 확산되자 어제 저녁 다시 웨이보를 통해 공식사과했다. 이에 따르면 “본사 소속 연예인 쯔위 본인은 하나의 중국원칙을 굳세게 견지하고 존중한다. 대만은 쯔위의 고향으로 떼어낼 수 없는 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만인으로서 대만독립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쯔위는 어떠한 대만독립관련 발언을 한 적도 없다. 인터넷에 나도는 쯔위가 대만독립을 지지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황안의 ‘마녀사냥’은 집요하다. 연일 웨이보를 통해 군불을 지피고 있다. JYP의 공식사이트에 나온 쯔위 프로필 변경소식도 신속하게 전했다. 이에 따르면 쯔위의 ‘국적: 대만’이 이번 사태로 ‘출생지: 중국대만’으로 급히 수정되었다는 것이다.
JYP가 파문확산을 진화하기 위해 초기에 내놓았던 “쯔위는 16세에 불과하다. 나이와 교육 수준을 고려했을 때 정치적 관념을 논하기에는 이르다"는 말과 관련해서도 황안은 어제 밤 자신의 웨이보에 이런 글을 올렸다.
“(대만독립파인) 채영문(차이잉원)이 ‘대만독립’은 대만의 젊은 세대들의 타고난 기질(天然成分)이라고 말했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스물 살 이하의 대만 청년들은 모두 대만독립파라는 것이다. 쯔위는 16살난 대만 여자애이다. 그러니 당연히 대만독립의 DNA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채영문의 말은 차치하더라도. 지금 문제는 내가 쯔위가 대만독립파다 아니다를 증명하는 게 아니다. 쯔위 당신이 대만독립파가 아니라고 증명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하길 청한다. "나는 중국인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면 너는 타고난 대만독립분자이다."고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중국에선, 중국법을 따르다, 중국넷심도 따르고!
제3자의 눈으로 보면 황당한 케이스이다. 그런데, 중국과 대만에서는 상층부 고위급 지도자들과의 의도와는 달리, 인터넷에서는 이런 일이 곧잘 일어난다.
지난 2013년 11월, 대만 여가수 장슈앤(장현)이 영국 맨체스터에서 공연을 펼칠 때였다. 이날 공연장에서는 영국에 온 대만유학생이 자랑스럽게 ‘대만국기’를 건네줬고 장슈앤은 당연히 그 깃발을 흔들었다. 그러자 이 자리에 있던 중국유학생들이 불만을 표출했다. 중국유학생은 “오늘, 정치이야기는 No!"라고 말했고, 장슈앤은 ”이건 정치가 아니다. 단지 깃발이 뿐“이라고 대응했다고. 이후 인터넷에 이날 있었던 일이 퍼졌고 결국 장슈앤은 연말에 예정되었던 베이징 공연을 취소해야했다. 당시 중국네티즌의 명분은 ”영향력 있는 스타가 그러면 안 된다“였다.
올해 3월에는 미국 팝가수 케이티 페리가 대만에서 공연을 가졌다. 케이티 페리는 이날 대만독립을 상징하는 해바리기 의상과 대만국기를 목에 내걸었다. 당연히 중국 네티즌들이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이에 대해 케이티 페리는 “해바라기 의상은 앨범 프리즘(Prism) 발표 당시 입었던 것이며, 대만국기 또한 정치적인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말해야 했다.
대만은 국제규모의 스포츠대회나 각종 이벤트에서 '타이완'이라는 국호대신 '차이니스 타이베이'를 사용해야하고, '대만국기' 대신 특정한 깃발을 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선 '대만올림픽위원회기'를 내세운다. 그래야만 출전이 가능하다. 그래서, 경기장에서 자기네 국기를 들고 나온 대만사람을 보면 '짠~해지는 경우가 있다.
대만에서는 내일 총통(대통령) 및 입법원(국회의원)선거가 동시에 치러진다. 현재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과 사이좋게 지내자”는 국민당 후보는 20%선, “지난 8년 동안 국민당에게 나라 맡겨 놓았더니 이게 뭐냐, 대만은 대만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40%선으로 앞서고 있다고 한다. 쯔위에게는 안 좋고, JYP에게는 난감하고, 대만으로선 혼돈의 와중에 빠져드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깃발 하나가 JYP를 늪에 빠뜨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