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태평성대를 누리던 신라. 하지만 100여 년이 지난 822년, 무려 절반 가까운 세력이 신라에 반기를 든다. 반란의 주인공은 바로 김헌창. 그는 ‘장안’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신라 사회를 뿌리째 뒤흔든다. 신라판 금수저, 진골 귀족이었던 그는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했나?
785년, 당시 왕위 계승 서열 1위는 김헌창의 아버지 김주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등이었던 김경신이 왕위에 오른다. 갑작스러운 큰 비로 김주원이 신라 왕실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폭우는 하늘의 뜻이라는 신라 귀족들의 의견에 왕좌를 빼앗긴 김주원. 그로부터 37년 후. 순순히 왕의 자리를 내어준 아버지의 선택과는 달리, 반란을 일으킨 김헌창. 그는 정말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해 불만을 품었던 걸까?
김헌창이 일으킨 난은 순식간에 절반 가까운 지방 세력의 지지를 받는다. 나라 이름을 장안(長安)이라 짓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신라를 전면 부정한 김헌창. 그러나 정부군의 일사불란한 진압과 밀고자로 인해 김헌창의 군대는 크게 패하고, 김헌창은 웅진성으로 가까스로 몸을 피한다. 이후 열흘간 계속된 정부군의 맹공격에 패배를 직감한 김헌창.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신라 사회를 뒤흔들었던 혁명의 불씨가 한 달 만에 허무하게 꺼져버린 것이다.
많은 세력의 호응을 얻었지만 백성들의 깊은 단결력을 끌어내는 데에는 실패한 김헌창의 난. 하지만 이 사건은 지방 호족을 깨우는 계기가 되며, 이후 후삼국 시대의 서막을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신라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김헌창의 불꽃같은 삶. 1월 10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이야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