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보러 가면 배우들이 연기하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 바닥에 함정같이 움푹 파인 공간이 있다. 그곳에는 악기를 든 연주자가 자리하고 있다. 지휘자는 연주자들 앞에 우뚝 서서는 무대 위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자신의 악보를 보고, 또 단원을 하나하하나 살펴보며 전체 음악을 이끈다. 인터미션 때가 되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무대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내려다보는 ‘탁 트이고, 푹 꺼진’ 비밀의 공간인 셈이다. 바로 ‘오케피’이다.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를 일본식으로 줄인 말이다. 마치 ‘에어컨’처럼.
바로 이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뮤지컬 작품이 공연된다. 연극과 영화, 그리고 에세이 등을 펴낸 다재다능한 일본작가 미타니 코키의 첫 번째 뮤지컬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인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영화)나 최근 대학로에 다시 오른 연극 ‘웃음의 대학’에서 알 수 있듯이 미타니 코키는 한정된 공간에 많은 인물을 정신없이 올려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들락날락 속사포같은 대사를 퍼부으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그런데 이야기는 가지를 치고, 뿌리를 뻗지만 결국은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펼친다.
뮤지컬 ‘오케피’도 유사하다. ‘극중극’인 뮤지컬 ‘보이 밋 걸’ 공연의 음악을 위해 오케피로 연주자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그리고는 미타니 코키 식으로 속사포 같은 대사로 사건을 펼쳐나간다.
지난 16일(수) 오후, 개막을 앞두고 취재진을 대상으로 한 프레스콜 행사가 열렸다. 지휘자(컨덕터)에 황정민과 오만석을 필두로 대부분의 배역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오케스트라 단원은 서범석/김태문(오보에), 박혜나/최우리(바이올린), 윤공주/린아(하프), 최재웅/김재범(트럼펫) 정상훈/황만익(색소폰), 송영창/문성혁(피아노), 김원해/김호(비올라), 백주희/김현진(첼로), 육현욱/이승원(기타), 남문철/심재현(드럼), 이상준(바순), 정욱진/박종찬(퍼커션) 등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특별한 주인공은 따로 없다. 모두가 자신의 사연을 갖고 악기를 연주하고 수다를 떤다.
‘컨덕터’는 지금 문제에 봉착했다. 뮤지컬 공연 연주에도 정신이 없는데 아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내와는 결별 중인데 그 아내는 바이올린 연주자이고, 그녀는 트럼펫 연주자와 연애 중이란다. 그렇다고 큰 소리 칠 입장은 아니다. 자기는 지금 하프연주자에게 미련이 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하프 연주자는 또 다른 연주자에게 애매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나머지 단원들도 통제불능이다. 스토리라인만으로 보자면 완벽한 미타니 코키의 작품이다.
올해 영화 ‘국제시장’과 ‘베테랑’, 그리고 신작 ‘히말라야’로 최고의 한해를 보내고 있는 충무로 명배우 황정민은 이번 작품에서 연기뿐만 아니라 연출도 맡았다. 황정민은 이 작품을 처음 대한 뒤 “한국 무대에 꼭 올려야지”하고는 지난 5년을 준비했다고 한다. 제작사 샘컴퍼니의 김미혜 프로듀서가 바로 황정민 배우 겸 연출가의 아내이다.
한편, 프레스콜이 진행된 날 저녁에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V앱을 통해 ‘뮤지컬 오케피 토크 앤 송’이 생중계로 진행되었다.
뮤지컬 ‘오케피’는 오늘(18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참, 그럼 뮤지컬 ‘오케피’를 공연할 동안 진짜 연주를 담당하는 오케스트라는 어디에 숨어있을까. 무대 상단에 올라가 있다. 특이한 배치다.
뮤지컬 오케피 (Musical Orchestra Pit)
일시: 2015년 12월 18일(금) ~ 2016년 2월 28일(일)
장소: LG아트센터
프로듀서: 김미혜 연출:황정민 음악감독_김문정
대본: 미타니 코키 작곡: 핫토리 다카유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