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를 휩쓴 영화 ‘아마데우스’는 피터 쉐퍼의 무대 희곡이 원작이었다. 이 영국 출신 극작가의 또 하나의 걸작이 바로 ‘에쿠우스’이다. 1975년 처음 한국무대에 오른 뒤 꾸준히 한국 연극 팬의 사랑을 받아온 ‘에쿠우스’는 지난 가을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 뒤, 잠시 휴식을 갖고 지난 주말부터 대학로로 무대를 바꿔 공연을 이어간다. 일곱 마리의 말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소년 알렌의 정신감정을 의뢰받은 의사 다이사트의 이야기를 통해 정치, 종교, 성(性) 등 다양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던져주는 이 작품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 15일(화)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는 연극 ‘에쿠우스’의 프레스콜 행사가 열렸다. 한국 초연 40주년 기념공연에 참여한 배우 조재현, 김태훈, 류덕환, 서영주, 김윤호 등이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하이라이트 장면에 대한 시연을 펼쳤다.
‘에쿠우스’는 영국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는 한 의사의 이야기인 셈이다. 왜 열일곱 소년은 그런 잔인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 정신감정을 의뢰받은 시골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는 소년과의 대화를 나누며 소년의 정신세계 심층을 지배하는 어린 시절의 끔찍한 경험과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다.
40분 남짓 진행된 하이라이트 장면 시연을 끝낸 배우들과 이한승 연출자가 무대에 올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젊은 시절 알런의 아버지 프랑크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이한승 연출가(극단 실험극장 대표)는 ‘에쿠우스’가 오랜 세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신. 인간, 섹스에 대한 극작가 피터 쉐퍼의 깊은 사고에 대한 연출가의 해석과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무대를 장악하였기에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고 분석했다.
‘에쿠우스’하면 바로 연상되는 조재현은 자신과 에쿠우스의 인연을 소개했다. “1985년 대학교 2학년 때 객석에 앉아 처음 관람했었다. 그때 알런은 최재성씨였고, 질은 이미소의 어머니 김부선이었다. 언젠가 저 무대에 꼭 서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6년 뒤에 알런으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조재현은 알런을 연기하다 다이사트를 연기하는 것에 대해 “매력적인 역할이다. 20대 때 알런을 했을 때 다이사트 의사는 말만 어렵게 하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 마음을 알게 되었고 연민이 갔다.”며 “오래 전에 쓰인 글이지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문제를 쓴 것 같다.”고 연륜이 묻어나는 대답을 했다.
그러면서 이번 공연과 관련하여 “미국 브로드웨이 연극을 보았더니 우리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우리는 무겁고 진중한 연극이지만, 브로드웨이는 주제는 무겁지만 가볍게 진행되더라. 우리 공연은 연극성이 강하고 힘이 있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잇달아 다이사트 역을 맡은 김태훈 배우는 “어렸을 때 나에겐 알런을 시켜주지 않았다. 내가 말띠라서 연기를 하다 보니 말에 대한 생각, 인간본질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막을 뛰어가는 신나는 마음, 알런의 나이에 갖고 있다가 중년이 되면서 달리지 못하고 있는 것, 알런과 다이사트를 보면서 내 마음 속에 혼재되어 있다.”며 “중년인 지금, 젊었을 때, 작품 속 알런의 꿈, 알런을 맡고 싶은 배우의 꿈. 다이사트가 되어 인생을 바라보는 많은 것을 느끼며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복잡다단한 심경을 피력했다.
에쿠우스의 열일곱 소년 알런의 사회주의자 아버지와 너무나 독실한 기독교도 어머니의 영향 아래 왜곡된 사랑과 가치관으로 성장했다. 류덕환, 서영주, 김윤호가 알런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류덕환은 6년 만의 알런 복귀이고, 서영주는 역대 최연소 알런 역을 맡게 되었다.
알런을 다시 맡은 류덕환은 “식상한 대답이지만 영광이다. 19살 때 처음 희곡을 읽었을 때 지문이 너무 자세하여 오히려 이해를 못하겠더라. 화가 날 정도였다. 그 후 연구를 많이 했다. 조재현 선배님이 2009년에 불러주셔서 처음 ‘에쿠우스’를 만났다. 지금 다시 알런을 하는 것은 그때 너무 어렸기 때문에 보여주지 못했던 알런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에 새로이 알런에 합류한 김윤호는 “첫 연극 작품을 ‘에쿠우스’, 그것도 알런 역을 맡아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밝혔다.
다니엘 레드클리프도 이루지 못한 실제나이 17살의 알런을 연기한 서영주는 “에쿠우스로 입시준비를 했었는데 오디션을 보고 이 역을 맡게 되어 운명적인 것 같다.”며 “이 역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알런을 표현하려고 하는데 조재현 선배님이 줄곧 알런은 순수한 아이다. 사랑스런 아이다.고 말해 주셔서 그런 마음 가짐으로 연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끔찍한 마구간 사건이 일어난 그날, 현장에는 알런과 함께 질 메이슨이라는 소녀가 함께 있었다. 비정상적 가정/교육 환경에서 자란 알런이 질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순간 알런은 “에쿠우스”라는 환청과 함께 극도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질 역은 이미소와 김예림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이미소의 어머니 김부선도 오래 전 이 역할을 연기했었다.
한편, 이날 조재현은 자신의 딸 조혜정에 대해 “난 누구에게 구체적인 연기지도를 하지 않는다. 딸이 나온 드라마도 안 본다. 살부터 빼라는 이야기만 했다”면서 큰 웃음을 안겨주고 기자간담회를 마무리 지었다.
‘에쿠우스’는 내년 2월 7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된다.
연극 ‘에쿠우스’
출연진: 조재현, 김태훈, 안석환, 류덕환, 서영주, 차유경, 유정기, 이양숙, 이은주, 노상원, 은경균, 남명지, 조창주, 최희진
작가: 피터 쉐퍼 연출: 이한승
공연기간: 2015년 12월 11일 ~ 2016년 2월 7일
공연장소: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사진제공= 수현재컴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