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엄청난 작품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홍상수 감독은 지난 20년 동안 정력적인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그의 열일곱 번째 감독작품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곧 영화 팬을 찾는다. 이 작품은 지난 달 열린 제68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대상(황금표범상)과 남우주연상(정재영)을 수상하여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좋다. 지난 17일(목)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는 홍상수 감독과 주연배우 정재영, 김민희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자신이 감독한 영화상영회의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초청받아 수원에 내려온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의 하룻밤 꿈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최 측의 실수로 하루 일찍 내려온 그는 하릴없이 수원 화성행궁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윤희정(김민희)을 만난다. 처음엔 수작처럼, 이야기를 걸었고 그녀의 화실을 찾아 그녀의 그림을 감상한다. 그리고는 홍상수영화답게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소주를 끝없이 들이키며 수다를 뜬다. 그리고는 밤이 깊어지자 이번엔 자리를 바꿔 그녀의 지인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신다. 그리고 실수를 한 것도 같고, 약속을 한 것도 같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영화는 같은/비슷한 이야기구조로 1부와 2부가 이어진다)
홍상수영화답게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제일 컸다. 띄어쓰기 없이 제목이 표기된 것에 대한 질문이다. 이날 제공된 보도자료에도 그 질문이 있다. 그런데 예상대로 홍상수 감독의 답변은 싱겁다. “제목이 글자가 워낙 많아서 그렇게 해 본 겁니다.”라고.
기자간담회에서 홍상수 감독은 제목과 영화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더 풀어놓았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의 이야기에 대한 반성같은 것이 2부에서 캐릭터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1부와 2부가 짝을 이뤄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부는 기본 초석이 되는 거고 2부는 조금 더 건드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부에는 내레이션을 없애고 조금 더 객관적 시점을 보여준다. 그렇게 본 관객이라면 이 이야기가 3부, 4부, 5부까지도 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어진 시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순간에 충실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운가를 말한다.”고 해석했다.
홍상수영화답게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홍상수 신작의 의미와 그 장면의 숨은 뜻’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날따라 홍 감독은 정색을 하고 자신의 영화에 대해 항변했다. “저는 하나의 주제의식을 따라가며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조각들의 배열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어떤 관객은 1-2-3-4-5를 가져갈 것이고 어떤 사람은 4-2-5-7을 가져가서 자기 식으로 감상할 것이다. 나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스타일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대구를 이루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더블 스트럭처 .쌍을 이루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마도 사람들이 삶에 대해서 쳐다보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틀을 갖고 봐야 의미가 있다. 그 개념을 통해 삶을 보게 되면 무언가를 깨닫는다. 개념이 부족하면 다른 개념으로 옮겨가서 쳐다 보게되고 해석의 틀을 갖게 된다. 그런 개념 속에 빠져 세상을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구체적인 것을 두 개 비교해서 보여주면 자기 식으로 소화하고 받아들인다. 둘 사이의 비교를 통해 많은 것을 느낀다. 그래서 대구 구조를 많이 사용한다.”며 친절하게 자신의 영화미학을 소개했다.
최근 막을 내린 KBS정치드라마 '어셈블리'에서 진상필 의원으로 진중한 모습을 보여줬던 정재영은 이번 영화에서 다면적이 연기를 해낸다. 조금은 먹물, 조금은 예술가, 그리고 대부분은 수컷본능의 남자역할이다. ‘우리 선희’에 이어 두 번째 홍상수 감독 작품에 출연한 정재영은 “방식은 비슷했다. ‘우리 선희’ 때는 감독님과 술을 많이 마셨고, 이번에는 감독님 몸이 안 좋으셔서 많이 못 드셨다”고 현장분위기를 전했다. 함께 공연한 김민희에 대해서는 “첫 촬영할 때부터 신비한 만남이었고 그것이 끝까지 이어졌다. 꾀죄죄한 옷을 입어도 신비로왔다.”며 “유부남이어서 아쉬웠던 작품이었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정재영은 자신의 음주연기에 대해“저는 술 먹고 연기하는 것이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과하게 마셔서 필름이 끊길 지경이었다. 대사를 제대로 한 게 기적 같다”고 덧붙였다.
홍상수 감독영화에 처음 출연한 김민희는 “행운이었고, 좋은 경험이었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 기분 좋았다. 정재영 선배님이 출연한 ‘우리 선희’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선배님이 이 영화에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고 기대됐다”고 덧붙였다
영화 마지막에 흰 눈이 흩날리는 장면에 대해 김민희는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찍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던데 정말 저도 기적을 경험했다”며, “엔딩 씬을 찍을 때 갑자기 눈이 내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며 “30분 만에 3센치의 눈이 쌓였다. 눈이 내려서 정말 예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개인적으로 기적을 경험해서 좋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도 홍상수영화답게 '여자' 나오고, '술' 마시는 장면 나오고, '영화' 쪽 일을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에 대해 홍상수 감독은 "제가 영화감독이다. 제가 모델이 된 것도 있고, 본 것도 있고, 배우들이 가져온 것도 있다. 내가 영화감독인데 피하고 싶지 않다. 내가 비행기 파일럿도 아니고. 내가 아는 것을 갖고 만드는 것이 좋다. 모르는 것을 찍으면 상투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만들지 않겠나. 아는 것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대답했다.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이야기, 이번엔 확실히 웃기기도 한 홍상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9월 24일 개봉된다. (영화/박재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5년 9월 24일개봉/청소년관람불가)
감독: 홍상수
출연: 정재영 김민희 윤여정 기주봉 최화정 유준상 서영화 고아성
제작: 영화제작전원사 배급: NEW,영화제작전원사 홍보사:무브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