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서 수요일로 넘어가는 날, 밤 12시 35분에 KBS 1TV에서 방송되는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아니 대한민국 극장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영화들이 주로 편성, 방영되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재기발랄한 인디영화계의 새 얼굴을 만나볼 수 있는 기쁨이 주어진다. 오늘 밤 방송되는 작품 ‘들개’도 그러한 발견의 기쁨이 있는 ‘독립영화’이다.
‘들개’는 작년 봄에 극장에서 개봉된 김정훈 감독의 작품이다. 독립영화답게 혼자서 각본과 편집까지 해치운다. ‘들개’는 두 주연배우의 케미가 폭발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정구(변요한)는 고등학생 시절 ‘과학적’ 사고를 친 전력이 있다. 꼴도 보기 싫은, 폭력적인 선생 하나를 응징하기 위해 사제폭탄을 터뜨려 소년원에 갔다 온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 이후 대학을 나왔지만 번번이 입사면접에서 떨어지고 어쩔 수 없이 알바와 다름없는 대학 조교로 연명하고 있다. 낡은 자동차에 세간도구를 싣고 다니며 성질 더러운 교수 밑에서 조교생활을 하며, 때때로 면접보고 떨어지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책이 있다면 사제폭탄을 만드는 것. 하지만 ‘과거’가 있고 태생이 새가슴이다 보니 그것을 터뜨릴 자신이 없다. 그래서 무작위로 누군가에게 폭탄을 보내어 대신 터뜨려주기만을 바란다. 그런데 그런 그에 나타난 또 하나의 이상한 놈이 있었으니 바로 효민(박정민)이다. 사회에 대한 불만, 기층세대에 대한 반항심으로 가득한 효민은 점점 대범해지더니 정구의 사제폭탄을 사회체제에 대한 복수의 도구로 활용한다. 질주하는 효민의 폭발본능에 ‘무늬만 조교’ 정구는 어찌할 줄 몰라 한다.
제목 ‘들개’는 야생의 길들여지지 않은 주인공을 이야기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엇나가서 인생 전체를 말아먹은 정구나, 좋은 조건에서 태어났지만 사회의 불평분자로 성장한 효민 둘 다 대한민국 공교육, 혹은 청년현실의 들개인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정구는 사회체제에 편입하려고 애쓰면서 한편으로는 사소한 복수를 꿈꾸는 자이고, 효민은 그런 동기와 의지 자체를 비웃으며 사회에 대한 굉장한 물리적 충격을 주려는 무정부주의자에 가깝다. 두 사람은 마치 선과 악이 한 몸에서 투쟁하는 한 사람인 듯한 행동을 보여준다. 악한 짓을 부추기면서 한편으로는 “그래선 안 돼”라고 도덕률을 내세우는 부조리한 투쟁. 사회를 전복시키려면 우선 기치를 선명하게 들어야할 것이다. 정구와 효민 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10여 년 전 미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유나버머의 그림자도 조금 느껴진다. 아마도 시한폭탄과 대학의 등장 때문일 것이다. 감독은 그 속에서 청춘의 고뇌와 사회규범에 대해 폭발력 있는 이야기를 던져놓는다. (박재환,201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