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지은 / 콘텐츠 구성= 박채원 / 영상 크리에이터= 맹루디아]
“관객분들에게 믿음을 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2009년 가요계에 등장한 걸그룹 f(x)의 메인 보컬 루나는 아이돌 활동 이외에도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2011년 2월 4일 ‘금발이 너무해’ 엘 우즈 역을 맡아 뮤지컬 데뷔를 했으며 이번 해로 뮤지컬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그와 함께 지난 10년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Q. 뮤지컬 데뷔 10주년을 맞은 소감이 어떠신가요?
“굉장히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춤, 노래하는 게 너무 좋아서 시작을 했었는데 이렇게 어느덧 10년이나 흘렀다는 게 정말 믿어지지 않아요. 신뢰가 많이 쌓인 것 같아서 그 신뢰를 바탕으로 많은 대중분들, 관객 분들에게 믿음을 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Q. 지난 10년간 해온 역할이 굉장히 많아요. 그 발자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2011년 2월 4일, ‘금발이 너무해’에서 ‘엘 우즈’ 역할을 맡으며 데뷔했어요. ‘금발이 너무해’는 엘 우즈가 “금발은 멍청하다”라는 당시의 편견을 깨고 강인하게 지내며 사랑을 쟁취하는 내용이 담긴 작품인데요. 엘 우즈 역을 맡아 통통 튀고 발랄한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저는 그걸 보면서 루나씨 본인이랑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스스로 볼 때 싱크로율이 어떤지 궁금했어요.
“사실은 싱크로율이 한 1~2% 밖에 안 되는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이 캐릭터를 만났을 때 장유정 연출가님과 당시 조연출이셨던 한가람님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무대에 서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정말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사실 엘 우즈를 만나서 인생이 바뀌었어요. 제가 엘 우즈를 닮았다고 말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건 제가 엘 우즈를 만났기 때문이에요. 전 트리플 A형이에요. 다들 O형 아니면 B형, AB형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엘 우즈를 만나면서 많이 밝아졌던 것이에요. 인생에 ‘아, 내가 여성으로서 또 10대 청소년으로서 그리고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한 계기가 됐어요. 저를 긍정적인 마인드로 잘 바꿔준 인생 캐릭터에요.”
Q. 같은 해에 ‘코요테 어글리’라는 작품에서도 바이올렛 역을 맡았어요. 가수가 꿈인 바이올렛이 클럽에 취직을 하면서 우정도 쌓고 사랑을 쟁취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어린 나이에 f(x)로 데뷔를 해서 가수라는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온 본인의 모습이 많이 떠올랐을 것 같아요.
“그 당시 기억이 생생해요. 정말 감사하게도 제가 데뷔했던 작품에 연달아 ‘코요테 어글리’를 하게 되었는데 ‘금발이 너무해’때 배우 분들을 ‘코요테 어글리’에서 다시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불편한 점도 적었고 그리고 제가 애기다 보니 선배님들께서 가족처럼 매일 연기도 가르쳐주시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매일 놀고, 배우고, 학교 다니고, 일도 하면서 지냈던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재밌었던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가수로서 굉장히 바쁘게 활동할 때 했던 작품이어서 그런지 저랑 상황이 비슷한 게 많아서 작품에 몰입하기 좋았어요.”
Q. 2013년 하이틴 드라마의 정석 뮤지컬인 ‘하이 스쿨 뮤지컬’에서 가브리엘라 역을 맡았는데 고등학교 생활이 주제다 보니 학교 생활을 제대로 즐겨볼 기회가 많이 없었던 만큼 이 작품을 하며 느꼈던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이 작품을 하면서 '정말 학창 시절을 잘 보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정말 운이 좋았어요. 학창 시절 친구들, 선생님 모두 잘 만나서 너무 잘 보냈고 빠짐없이 교육도 잘 받았고 데뷔 후에도 SM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에서 너무 잘해주셔서 거기서도 일도 열심히 했어요. 돈도 열심히 행복하게 벌고 공부도 정말 행복하게 해서 저는 그렇게 학창시절의 안타까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미안한 점은 친구들에게 우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던 것 같아서, 매일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미안한 것이 있었어요. 이 작품 할 때 집중했던 포인트는 뭐였냐면 ‘내가 가수로서 얼마나 재능을 가지고 있을까? 그걸 얼마나 뽐낼 수 있을까?’라는 시도를 많이 하는 거였어요. 양주인 음악감독님이셨는데 굉장히 파워풀하시고 섬세하세요. 그래서 음악적으로도 가수로서도 잘 이끌어주시고 배우로서도 이질감이 없도록 중간점을 맞춰주셨어요. 왜냐하면 이때만 해도 가수가 뮤지컬을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저도 초반이었고 그러다 보니 '뮤지컬 창법과 가요 창법 차이가 어때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거든요. 요즘은 많이 하시니까 “창법이 어디 있느냐, 노래에 맞게 잘하면 되지”라는 인식이 많이 생겼지만, 이 당시만 해도 뮤지컬 창법이라는 게 있었을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작품을 잘 만나서 가요처럼 행복하게 했어요."
Q. 다음 작품은 2015년 공연했던 ‘인 더 하이츠’에요. 라틴계 이민자들의 동네 워싱턴 하이츠에서 3일 동안 일어나는 일을 다룬 미국의 뮤지컬이죠. 니나 역을 맡아 스트릿 댄스, 랩이 기반인 작품에서 다양한 활약을 펼쳤어요. 많은 분들이 루나님이 메인 보컬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댄서로 S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했잖아요. 댄스에 대한 열망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인 더 하이츠'에서는) 제가 춤추는 신이 하나도 없어요. 딱 한 신이 있긴 하지만 잠깐 그루브 타는 정도고, 거의 노래를 불러요. 니나는 춤을 잘 추면 안되는 캐릭터라 많이 억누르느라 힘들었어요. 지금 제가 ‘그날들’이라는 뮤지컬을 하고 있는데, ‘그날들’의 ‘그녀’와 굉장히 많이 닮은 캐릭터가 아닐까 싶어요."
Q. 다음에 만약 댄스가 많이 나오는 작품을 하고 싶으신가요?
“무조건이에요. 그래서 전 ‘맘마미아’ 때 너무 행복했어요. 춤추고 노래하고 다 하잖아요. 저는 약간 댄스가 많이 들어간, 여태 보여주지 않았던 여성의 파워풀하고 힙하고 멋있는 무술이 가미된 댄스도 해보고 싶어요. 제가 기계체조도 배웠기 때문에 또 한 번 무대에서 보여드릴 일이 생겼으면 해요. “
Q. ‘레베카’에서 나(Ich) 역을 맡아 가난한 고아 출신이라는 사실과 막심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고민에 자신감을 잃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이후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하는 캐릭터를 선보였잖아요. 유튜브 영상에서 보는 루나는 없던 자존감도 생기게 하는 자존감 요정 같아요. 누구나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자존감을 극복하는 팁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솔직해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착한 아이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너무 어려서 그런지 상처가 많이 됐어요. 사회에 나오니 착한 것도 ‘병’이 되어버리니까 사회라는 게 무섭고 험악하게만 느껴져서 자존감이 되게 많이 낮아졌었어요. 그럴 때 극복했던 방법은 내가 받고 싶은 대우,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면 되겠다는 것이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많이 좋아지고 동시에 자존감도 높아졌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이 얼마나 행복하고 가치 있는지 깨닫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살다 보면 일상에 지치고 삶에 지쳐서 모두가 인생이 힘든 거라는 생각할 때 있잖아요. 그런데 전 행복하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지치는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내가 일을 할 힘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해서 그런 것들이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었어요.”
Q.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았어요. (의상에서 보이다시피) 유명한 소설 원작이고, 시대극이기 때문에 고심했던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 이 캐릭터를 연기하며 가장 중점을 뒀던 포인트는 무엇이 있을까요?
“원작에 충실히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전에 엘 우즈라는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었어요. 나는 모든 것을 다 헤쳐나갈 수 있어! 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스칼렛 오하라 대본을 받았을 때 너무 어려운 거예요. 대사가 일단 너무 길고 주저리주저리 혼잣말하는 신이 정말 많아요. 그리고 사랑을 굉장히 갈구하면서도 남들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사랑인 거죠. 그녀만의 감정을 이해시키는 작업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원작에 충실하다 보니 그 시대에는 그럴 수 있었겠구나’,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고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면 감히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하루에 세네 번을 봤어요. 원작 영화가 4시간 30분 정도 되거든요. 그 영화를 대본을 펴놓고 영어 대본, 한국어 대본을 구분해가면서 영어대사 톤이랑 한국어 대사 톤을 따로 연습했어요. 그래서 한국어랑 영어랑 최대한 말은 비슷하되 어감은 다르게, 관객분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연습했어요. 이 당시에 더블 캐스트였던 김보경 배우님이 함께하셨고 보경 언니가 많이 도와줬어요. 이때 아이 낳으시고 얼마 안 돼서 복귀작이었는데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Q.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맘마미아!’ 소피 역을 맡아 열연했어요. 스카이와의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아버지를 찾으려는 소피는 당차고 발랄한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캐릭터인데, 자신이 생각하기에 소피 역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맘마미아’라는 작품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뮤지컬 처음 시작했을 때 꼭 해보고 싶었던 작품 1순위에 항상 있었어요. 팬분들도 항상 뮤지컬 오디션 때 되면 ‘맘마미아’ 꼭 봤으면 좋겠다고 그랬는데 떨어졌어요. 그러다가 어렵게 붙은 작품이었는데 하필 그때 제가 많이 아프다는걸 알게 되면서 공연을 포기하고 병을 치료하는 데 주력을 할까 고민했는데 사실 병행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배우분들 덕분이에요. ‘루나가 아파도 우리가 옆에서 지켜줄 테니까 같이 공연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옆에서 매일 울면서 같이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Q. 그리고 대망의 2021년, 한중수교의 비밀을 덮으려는 정부와 그 사건에 휘말린 두 남녀의 실종사건을 다룬 창작 뮤지컬 ‘그날들’에서 비련의 운명을 가진 그녀 역을 맡았어요. 이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결심한 핵심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본에 ‘실어증’이라는 단어를 보고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그걸 찾아보다가 이 여자가 가진 병이 무엇이었고, 그녀가 안고 있고 겪었던 사연이 무엇일까 궁금해졌어요. 저랑 닮은 구석이 많은 캐릭터에요.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인데 이 캐릭터가 딱 그래요. 그래서 더 어려운 작품이었어요. 여태까지는 나랑 너무 다른 캐릭터를 해서 많이 배웠는데 이제는 배우로서 다른 게 필요했어요. 그래서 내가 뮤지컬 배우로서, 가수로서 다른 것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도 터졌고 스스로 아프기도 하다 보니 잘 낫지도 않아서 희망이 없더라고요. 사람도 만나기 싫어지고 작품도 하기 싫어지다 보니 의욕도 상실하게 되고 배우로서 터닝포인트가 많이 필요했던 시기였어요. ‘그날들’ 하게 된 시기가 되게 많이 아팠을 때라 너무 무서웠어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무서웠어요. 그래서 작품을 고민했었는데, 장유정 연출가님이 하자고 연락을 주셔서 딱 믿고 많이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근데 아니나다를까 정말 많이 배웠고요, 지금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Q. 현재 공연 중인 ‘그날들’의 어필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극장을 찾아주실 관객 분들에게 이야기해주세요!
"많이 보러와 주셨으면 좋겠고 저의 신선한 캐릭터,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그리고 많은 배우분의 멋있는 연기와 무대, 안무까지 다 보실 수 있답니다. 가족, 친구와 함께 꼭 보러오세요~ 3월 7일까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