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놉’ 열풍이 상륙해 N차 관람을 부단히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놉’에서 주프(스티븐 연 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제이콥 김 배우를 향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아역배우 주프 역을 맡아 ‘놉’을 관통하는 사건이자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시트콤 참사 장면에서 양가의 감정이 담긴 공포 연기를 훌륭히 소화했다. 특히 고디와 주먹 인사를 하는 부분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며 그 신을 대범하고도 섬세하게 살려낸 제이콥 김 배우의 호연에 찬사가 이어졌다. 흡입력 있는 연기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제대로 인상을 남긴 제이콥 김 배우와의 인터뷰를 단독으로 진행했다.
Q. 한국 팬들이 아쉬워할 정도로 국내에 제이콥 김 배우에 대한 정보가 많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으로서 배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먼저 묻고 싶다. 배우를 꿈꾸고 오디션을 보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는가?
‘놉’이 첫 영화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 캐릭터를 따라 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가 2020년 말 즈음 감기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에서 기다리다가 아빠의 SNS에 우연히 아역배우 오디션 광고를 접했고 단순히 재밌겠다 생각이 들어 그 오디션을 본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에 에이전트가 생기고 2021년 2월부터 정식으로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고 이후 ‘놉’ 오디션도 보게 됐다.
Q. '놉'에 캐스팅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놉’은 세 번째 작품 오디션이었다. 1차 오디션을 통과한 것은 ‘놉’이 처음이라 준비를 많이 했다. 그냥 연기만 하지 않고 신에 필요한 소품들도 다 준비했다. 선물 박스에서 올라가는 풍선들, 고디와 실감 나게 연기하기 위해 준비한 원숭이 인형 등을 준비했다. 그래서인지 오디션 중간중간 조던 필 감독님이 많이 웃으셨다. 세트장에서 영화를 찍을 때 “최상의 신을 만들기 위해서 감독님이 던진 여러 가지 방식의 디렉션을 스펀지같이 잘 소화해서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칭찬을 들었던 적이 있다. 오디션에서 그런 점들이 어필됐다고 생각된다.
Q. 조동필이라는 한국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한국에서도 공포영화로 유명한 조던 필 감독님의 작업에 참여했는데 소감은 어떠한가?
아직 어려서 공포영화는 보지 않아 처음에는 잘 몰랐다. 하지만 아빠가 조던 필 감독님을 잘 알고 있었고 어떤 분인지 얘기 전해 듣고는 믿을 수 없었다. 코미디언이셨던 분이 감독으로서의 첫 데뷔 영화인 ‘겟 아웃’으로 오스카 각본상까지 받으셨다. 사실 아직도 조던 필 감독님의 ‘놉’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최종 오디션에서 ‘Gordy’s Home’ 신을 몇 번 연기한 후 감독님께서 “니가 원하면 이 역할을 너에게 줄께”라고 말씀하셨을 때 정말 믿기지 않아서 나오던 눈물을 꾹 참고 있다가 오디션이 끝나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Q. 시트콤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신이 인상 깊었다. 너무 실제적이라 '놉'에 등장하는 침팬지 고디가 실제 동물인지, CG인지 아니면 부분마다 다르게 촬영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하다.
주변 친구들도 다 궁금해했다. 고디는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 '혹성 탈출', '콩: 스컬 아일랜드' 등 수많은 영화에서 무브먼트 코치로 활동하신 테리 노터리(Terry Notary)라는 유명한 스턴트 배우분이 특수 모션 캡처 의상과 그 위에 고디 의상을 입고 나와 함께 연기했다. 고깔모자도 쓰셨다. 그 이후에 CG를 입힌 것이다.
Q. 듣고 보니 더 현장에 대해서 궁금해진다. 특히 그 신의 배경이 됐던 '놉'의 가상 시트콤 Gordy's Home 오프닝 영상이 배우 본인의 SNS에 올려져 있는데 영화 '놉'에서는 공개가 되지 않았던 영상이라 신기했다. 정말 전형적인 1990년대 미국 시트콤 오프닝을 패러디한 느낌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명랑하게 등장하는 제이콥 김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그 영상은 조던 필 감독님이 미국에서 7월 22일 개봉 후 이틀 뒤인 7월 24일에 SNS 계정을 통해 공개했다. 내가 나오는 신들 중에서는 그 시트콤 오프닝 영상을 제일 먼저 촬영했었다. 처음에 낚시 신은 영상에서는 잘 보이진 않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 안에 있는 호수가 세트장이었다. '쥬라기 공원'을 촬영했던 장소이기도 하다고 들었다.
감독님 특유의 디테일이 들어간 것도 기억난다. 예를 들면, 내가 식탁 밑에서 게임을 할 때 목과 어깨에 손전등을 끼고 하는 장면이 있다. 감독님이 (이 신을) 찍기 전에 90년대 시트콤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 어땠는지 내가 이해할 수 있게 '풀 하우스', '알프', '아웃 오브 디스 월드'의 인트로를 보내주셨다. 가족이 아닌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로봇 춤을 춰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조금 긴장했지만(웃음) 하면서 재밌었다.
Q. 시트콤 세트장에서 참혹한 사건이 벌어진 후 고디와 함께 주먹을 부딪히는, 피스트 범프(Fist Bump) 장면이 많은 의미를 담은 명장면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감독님으로부터 특별한 디렉션이 있었는가?
스턴트 배우님과 찍는데도 가짜 피가 묻어있어서 그랬는지 오싹했다. 아빠가 보여줬던 영화 'ET' 장면도 생각났다. 감독님은 특별한 디렉션을 주셨다기보다는 촬영 전날 '쥬라기 공원'에 나왔던 아이들 표정연기를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셨다. 다른 장면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감독님은 같은 신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을 해보게끔 유도해 주셨다. 그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가끔은 실수한 장면이 최고의 장면일 수도 있으니 해보고 싶은 표현이 있으면 다 해봐."
Q. 국내에서 이 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었는데 가장 많았던 해석이 세트장에서 유일하게 주프가 살아남은 이유가 주프와 고디의 공통점 때문이라는 가설이었다. 주프는 전성기를 누리던 아역배우였지만 사실 백인 가정에 유일한 아시아인이라는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할리우드가 아시안 배우를 소비하는 '쇼'의 일환이었고 동물인 고디 또한 그랬기에 고디는 주프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우정을 느꼈던 것 같은데 제이콥 김 배우님도 이러한 해석에 동의하는가?
감독님이 이틀 전에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신 대로 이 질문은 똑바로 서있는 신발과 함께 정말 많은 분들이 가설을 세우고 궁금해하시는 질문인 것 같다. 하지만 정확한 답은 안 주신다. 감독님이 말씀하신 대로 ‘놉’의 스토리텔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정확한 답은 나중에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정도 (그 해석에) 동의한다. 말씀하신 대로 주프와 고디는 백인 가정에 ‘입양’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고디는 그런 동질감으로 가족 중에서도 주프와 가장 친밀한 관계였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Q. '놉'에서 어른이 된 주프의 모습을 연기한 스티븐 연 배우는 '미나리'를 비롯해 미국 사회 내 한인의 존재에 대해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는 작품에 참여했다. 본인 또한 앞으로 미국 사회에서 성장하는 한인 배우로서 그 메시지를 대변하는 작품에 참여해 보고 싶은가?
그렇다. 영화 촬영을 하면서 사실 스티븐 연 배우님과 촬영이 겹치진 않았다. 근데 감사하게도 촬영 리허설하는 날 나를 만나러 와주셨다. 또 한 달 뒤 주피터스 클레임(Jupiter’s claim, 영화 속에 등장하는 놀이공원)에서 스타 라소 익스피리언스(star lasso experience, 주프의 쇼 이름) 촬영하는 날 초대해 주셔서 얘기를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미국 사회 내 한인의 존재에 대한 사회적인 이슈에 정말 관심이 많으시고 목소리를 많이 내기도 하셨다. 그런 이슈에 있어서 변화하고 있는 할리우드에서 한인 아역 배우로써 앞으로 활동하면서 접할 수 있는 장점, 단점, 기회, 도전 등에 대해서 조언도 많이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꼭 그 메시지를 대변하는 작품에 참여해 보고 싶다.
Q. SNS를 보니 영화 이외에도 K-POP 댄스 커버 영상을 올리는 등 한국 콘텐츠에 관한 관심도 높은 것으로 보여 반가웠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작품에서 배우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차후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혹시 목표가 있는가?
코로나로 방문하지 못했던 2020, 2021년을 제외하고는 매 여름 한국에 가는데 다양한 경험을 마주하고 나의 재능을 찾아내 보는 것도 의미 있고 재밌어 도전해 봤다. 한국 콘텐츠에도 관심이 많다. 미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한국 사람이기도 하다. 기회만 된다면 꼭 국내 제작 작품에도 출연해 보고 싶다. 부모님과 간혹 한국 영화도 보는데 윤여정 선생님을 비롯해 정말 연기 잘하시는 배우님들이 많으신 것 같다.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경험하고 다 배우고 싶다.
Q. 앞으로 제이콥 김 배우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배우의 정의는 무엇인가?
정말 운이 좋게 시작하게 된 배우의 길이지만 조던 필 감독님과 몽키파우 프로덕션, 유니버셜픽쳐스 관계자분들과 ‘놉’을 촬영하면서 너무나도 좋은 경험을 했다. 앞으로 더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경험도 쌓고 배우로서 성장하고 싶다. 어느 누군가의 연기를 따라 하거나 틀에 박힌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의 정의인 것 같다.
지금은 12살이니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생활하면서 12살의 아이의 감정을 풍부히 표현하고 18살이 되면 또 18살이 친구들과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그 세상을 충분히 즐기고 익혀서 연기할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만의 캐릭터가 확실한 배우가 되고 싶다. 이 역할은 내가 아니면 대체할 배우가 없을 만한 정도의 확실한 캐릭터와 카리스마를 가진 배우다. 예를 들면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한국의 마동석 배우님 같은, 대체불가능한 배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