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평화시장에서 부당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분신을 했던 청년 전태일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우리와 닮은 사람이었다. 영화 '태일이'(감독 홍준표)는 불꽃이 됐던 열사 전태일을 소재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주인공 태일이의 목소리는 장동윤 배우가, 어머니 이소선의 목소리는 염혜란 배우가, 악덕 사장인 한미사 사장 역은 권해효 배우가 맡았다.
'태일이'를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 작품의 높은 퀄리티와 가능성을 먼저 발견한 인물이다. 그는 '태일이' 또한 보다 쉬운 수단으로 관객들에게 마음이 전해질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 ‘태일이’는 지난 12월 1일 의미 있는 개봉을 맞았다. 비록 50주기에 개봉하기로 했던 계획이 연기되어 2021년 51주기에 개봉을 하게 됐지만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 이번 작품에 대해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Q. 노동환경에 대항한 다양한 인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전태일'이라는 소재를 건드리고 싶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최호철 만화가의 '태일이'라는 다섯 권의 만화책을 보고 이 사람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이 쉬운 언어로 많은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부터 태일이 영화 기획을 시작했다. 완성까지는 10년이 넘었고 스튜디오 가서 본격적으로 제작에 돌입한 것은 2018년도부터였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좀더 보편적으로 쉽게 애니메이션으로 다가가면서 그 사람의 삶과 신념과 정신을 무겁지 않게 아름답게 감동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전태일이라는 사람은 정말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도 못한 평범한 옆집 친구이자 오빠이자 동생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부당한 현실, 열악한 현실에서 안주하지 않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한자를 익혀가면서 깨달아 가고 주위에 함께 나누면서 자신이 속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마음을 보여줬다. 분신은 감히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선택이다. 의미 있고 중요한 사람들이 많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우리와 닮은 사람으로서 전태일이라는 청년의 존재 자체가 우리 사람들한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고 싶었던 사람의 이야기다.
Q. 저예산 영화이고 실존 인물을 애니메이션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시나리오화하는 것이 의외로 어려웠다. 분량의 압박이 있었고 본 것 처럼 어리 시절을 압축적으로 애니메이션 형식처럼 6분 정도에 담아냈고 열아홉살부터 재단 보조로 스물 두살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같은 청춘물을 생각했다. 캐릭터도 리얼리즘에 가까운 모양보다는 청춘만화나 순정물에 가까웠다. 홍준표 감독의 젊은 감각과 그림체로 만들어냈다.
Q. 배우 장동윤, 권해효, 염혜란 등 영화계 대세 배우들이 전부 모였다. 배우 개런티가 매우 적었는데 수년 전부터 참여 의사를 밝혀준 배우들도 있었다. 그외에도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 같다.
배우분들이 흔쾌히 출연에 응해줬다. 장동윤 배우는 젊은 배우면서도 이 인물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는 배우였다. 목소리가 맑았다. 그런 맑고 젊은 목소리가 20대의 태일이와 잘 맞았다는 생각이었다. 염혜란 배우는 '아이 캔 스피크' 때 처음 뵜는데 워낙 훌륭한 연기자다. 그도 이소선 여사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권해효 배우도 서울독립영화제 사회도 오래 보셨고 연상호 감독님의 애니메이션에도 출연한 적도 있다.
Q. 1970년대의 이야기지만 현대의 노동 문제와도 관통하는 이슈들이 담겨 있다. 2021년임에도 여전히 근로계약서를 써도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나.
어떤 분이 SNS에 긍를 올렸는데, 이 영화는 51년 전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2021년을 가로지르는 이야기인것 같다는 글이었다. 그 글에 크게 공감했다. 전태일이라는 사람 덕분에 우리는 노동 조합이라는 것에 대해 연대를 인식하게 됐지만 지금은 또다른 형태의 양극화가 너무 심화됐다. 산업재해, 죽음의 외주화로 인해 많은 청년들이 희생당하고, 빈부가 양극화 됐따. 훨씬 더 교묘하게, 어떤 면에서는 악랄하게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상황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이것이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나도 이 영화를 만들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었다.
Q. 만화 ‘검정고무신’을 보는 듯한 옛날 애니메이션에 대한 추억이 불러일으켜지는 장면들이 많았다. 한 열사의 역사적인 일대기라기보다는 가족에 대한 소중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고 가족 관객들이 많이 몰리는 연말에 딱 어울리는 영화 같았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애니메이션을 구현해낸 미술이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에게는 향수 어린 추억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그 시절을 모르는 어린 사람들에게는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가난하지만 소담한 마을의 전경과 정감있게 표현된 인물들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질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라는 소재가 주는 진입 장벽을 넘어서면 아이들과 손잡고 청소년 자녀들과 손잡고 부모님이 함께볼 수 있는 가족 영화로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뚫고 극장을 찾아와 ‘태일이’를 만날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영화의 관람 형태나 영화 산업의 구조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영화를 영화관에서 꼭 본다는 습관이 사라진 것 같다. 편하게 OTT 플랫폼을 통해서 쉽게 본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영화관을 예전처럼 가는 습관은 덜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를 규정하는 개념의 변화의 추이에 대해서는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관람 형태는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의 소망이다. 이 영화는 작년 50주기 때 개봉을 하려고 했으나 제작 일정도 늦어지고 코로나 상황도 심각해서 51주기인 이번 해에 개봉을 하게 됐다. 오랫동안 애써서 만든 가족영화이자 따뜻한 애니메이션 영화니 모처럼 가족들이 젊은이들이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상력을 그려내고, 음악이 잘 만들어진,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들은 극장에서 볼 때만 느껴지는 강력한 느낌을 느끼길 바란다.